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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나 정신분석에 관한 책들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대개 살아가는 게 힘든 시절이기 때문이지요. 분명 파이는 매년 늘어났다는데 왜 사람들의 생활은 더 쪼그라들고 삶은 더 고단해질까요.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어 답답해질 때, 남녘 사투리로 폭폭해질 때, 가슴속 분노는 자기 자신에게 주먹을 날리게 됩니다. 내면의 주먹질에 난타당하면 자존감과 에너지는 땅에 떨어지기 마련이니, 근래 자존감 살리기류의 책들에 독자들의 손길이 자주 간 이유일 겁니다.

이번 주 나온 신경인류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박한선 박사의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아르테)은 우리의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주먹질로부터 ‘거리두기’ 혹은 ‘무관심해지기’를 훈련하는 책으로 읽힙니다. 사실 복싱처럼, 거리두기는 상대를 잘 파악할 때 할 수 있습니다. 신경인류학자인 저자는 “태곳적 인류는 늘 행복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살았을까?”라는 질문을 먼저 던집니다.

인간은 오랜 진화과정에서 사회를 이뤄 살면서, 즉 ‘관계’ ‘소통’ ‘공감’이 생존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다른 동물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한 정서·감정·사고·판단·언어능력을 필요로 해서 큰 두뇌를 갖게 됐습니다. 그저 살아남는다는 원초적 신념을 위해서라면 호두 정도 크기의 뇌로 충분했다고 합니다. 즉 걱정하고, 고민하고, 슬퍼하고, 미워하고, 갈등하는 기능을 위해 뇌가 지금처럼 커졌으며, 우리 마음의 비합리성과 변덕스러움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요소라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인 셈이지요. 약하고, 변덕스럽고, 종종 추악하기도 한 우리 마음은 어떤 의미에서 튼튼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겁니다.

예컨대 불안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사회적인 것입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한 사회에서는 불안감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슬픔은 우리 마음을 정화할뿐더러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고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를 줍니다. 우리를 자주 괴롭히는 강박과 양심은 어떨까요. 사실 그것이 없었다면 인간들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역사를 기록하며 문명을 발전시키기 불가능했을 겁니다. 다 진화의 산물입니다. 그걸 안다면 어느 정도 주변과 자신을 괴롭히는 강박과 양심에 대해 ‘유연하게’ 기준을 낮춰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복잡한 마음과 감정이 없다면 스스로 옥죄는 감옥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순수한 기쁨도, 벅찬 감동도 같이 사라집니다. 사실 불가능합니다. 쉽지는 않지만, 감정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것들이 나만이 가진 개별적인 마음이 아니라 진화과정에서 ‘인간’ 누구나에게 프로그래밍된 보편적인 것일 뿐이라고 여길 수 있다면, 그렇게 ‘거리두기’를 한다면, 조금은 힘이 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저자는 조언합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