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밀착하며 구도 복잡해져
韓 촉진역할 실패땐 입지 난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 첫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해 보조를 맞추면서 미·북 양자 협상 구도로 진행되던 비핵화 협상 구도가 ‘미·일 대 북·중·러’ 구도로 회귀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단계적 해법의 북한과 ‘빅딜’의 미국 사이에서 ‘굿 이너프 딜’이란 모호한 방안을 제시한 문재인 정부의 ‘중재·촉진’ 역할이 현재처럼 미진할 경우 교착 국면 장기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핵 6자회담에 대해 “한·미의 안전보장으로 부족하다면 6자회담 틀은 북한에 대한 국제적 안전보장 체제를 고안하기 위해 아주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이번 회담에서 단계적 해법의 비핵화 방식에 의견을 같이하고, 필요하다면 2008년 이후 중단된 6자회담 틀을 다시 꺼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지난해 미·북 비핵화 협상 개시 이전부터 ‘쌍중단’(북한의 실험 중지와 한·미 연합훈련 중단)·‘쌍궤병행’(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동시 점진적 진행)의 중국 입장과도 맥이 닿아 있는 것으로, 이날 중국으로 이동한 푸틴 대통령은 이 안을 가지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갖고 북·중·러 연대 강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북·중·러의 이 같은 입장은 ‘톱다운’ 방식으로 일괄타결한 뒤 단계적 논의로 나아가겠다는 미국의 ‘빅딜’ 구상과 상충된다. 이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북·중·러에 대항하는 미·일 공동전선 강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백악관도 이번 미·일 정상회담에 대해 “우리의 목표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 비핵화(FFVD)’”라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미·일은 정상 간 협의를 바탕으로 한국과의 3각 공조를 구축하는 데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굿 이너프 딜’이라는 애매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또 문재인 정부는 비핵화 협상에서 북·중·러 대 미·일 구도로의 회귀 가능성도 낮게 보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푸틴 대통령은 이번에 비핵화 방법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며 “일단 미·일이 협상을 잘해보라는 의미에 방점을 찍었고, 6자회담 재개에 무게를 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