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교육감賞 전혜미

안녕하세요. 오늘따라 이 말이 참 어색합니다. 매일 아침 교단에서 만나는 선생님에게 건네던 말이었는데 이젠 이 한마디가 참 무색하네요. 저의 2학년도 벌써 중반으로 접어들었어요. 전 여전히 글을 좋아하는 문학소녀로 살고 있어요. 선생님, ‘마지막 잎새’라는 책 아세요? 제가 그 책에 나무로 살던 날이 있었어요. 언제 마지막 잎이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감으로 한 잎 한 잎 잃어가는 시기, 누구나 겪는 바로 그 시기. 불안하더라고요. 글이란 게 좋아서 시작했는데 그게 절 더 초조하게 만드는 거예요. 재능이 있어서 부럽다고, 혜미는 맨날 상을 타온다며 곁에서 친구들이 하는 그 말이 사실 더 무서웠어요. 나는 재능이 있어서도 아니고요, 상을 타고 싶었던 것도 아니에요. 그냥 인정받고 싶었어요. 그걸 유일하게 느꼈던 사람이 바로 선생님이에요.

선생님은 항상 국어수업을 하시다가도 아들 얘기를 많이 해주셨잖아요? 나이 40세가 넘어 겨우 가진 첫째이자 늦둥이 기웅이. 아들의 학교생활도 말해주시고, 이것저것 에피소드도 보따리 풀듯 말씀하시는 모습이 참 즐거워 보이셨어요. 처음에는 잘 몰랐거든요, 왜 그렇게 아들 이야기를 하시는지. 저희가 처음 함께 나간 그 백일장에서 수상집을 받았잖아요. 그때 알겠더라고요. 선생님의 시 구절에 있는 ‘가난한 싱글맘’, 이 문장.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이게 선생님 이야기라는 걸 한눈에 알아 버렸으니까요. 그래도 아들 얘기하며 늘 웃는 선생님이 너무 자랑스러웠어요. 나라면 그럴 수 없었을 테니까요. 선생님 얼굴에 늘 그늘이 져 있었던 것도 그때야 보이더라고요. 고생하셨어요. 누구보다 잘살아 오셨어요. 선생님은 저희를 끝으로 학교에서의 김미영을 정리하셨잖아요. 저희는 선생님에게 마지막 제자로 남으면서, 김미영의 마지막 학교에서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되었어요. 제게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시던 선생님, 늘 그립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시간을 막지 못한 채 각자의 삶을 향해 걸었어요. 제가 막 2학년에 적응하고 있었을 때, 선생님의 안부를 전화로 듣게 되었죠. 선생님께서 밥 한 끼 사주겠다며, 글 잘 쓰는 혜미랑 반장, 부반장 불러서 먹자고 하시던 그 목소리가 너무 정겨웠어요. 그래서 우리는 4개월 전쯤 선생님의 단골 식당에서 만나 사주신 비빔밥을 먹었죠. 비빔밥보다 선생님이 더 반가웠는데, 내색 못 했던 거 아직도 후회로 남고 있어요.

지금은 시청에 취직하셨다며 아이보다 순진한 얼굴로 미소를 머금던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더라고요. 여전히 열심히 사시는구나 하고. 교직을 내려놓은 선생님의 청춘은 어때요? 다시 찾은 삶은 또 어때요?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버젓이 김미영으로 살아가는 그 삶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이 제 인생을 응원한 것처럼 제가 선생님을 응원합니다. 감사했어요.


* 문화일보 후원,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주최 '감사편지 쓰기' 공모전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