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날’ 대한민국 法이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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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법학

내일 4월 25일은 제56회 법의 날이다. 최근 들어 도덕적 기반을 점점 잃어가는 사법부와 헌법재판소, 검찰의 행태를 떠올릴 때, 법에 정신이 있다면 슬픔에 겨워 울 것 같다는 느낌은 유별난 상상이 아니리라. 오늘날 인간의 삶의 다양한 국면, 즉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측면은 법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법이 이러한 삶의 지평에 경계 없이 매몰돼선 안 된다. 특히, 법을 권력의 시녀로 삼으려는 정치권력 때문에 법률가는 타락하고, 살아 있는 법은 감정을 상하고 있다.

정치 이데올로기가 법을 일방적으로 끌고 가면 법에서 도덕성은 고갈되고 법질서가 변질된다. 오히려 정치가 법적 평화와 질서 안정을 위해 법치에 봉사해야 한다. 법은 특정한 정치권력에 봉사하는 도구가 돼선 결코 안 되며,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평등하게 대우받도록 해야 한다. 법이 권력기관으로 하여금 개인이나 사회를 보호하도록 의무를 규정하는 곳에서는 다양한 활동 가능성 가운데서 상황에 부합하는 하나의 이익이 우선하도록 법원이나 헌재의 결정이 내려질 수 있고, 국가기관은 그에 따라야 한다.

다만, 법은 인간의 자유로운 질서 원형에 상응하는 질서라는 점에서 스스로 만능화하거나 절대화해선 안 되고, 겸손히 정당한 인간 질서에 봉사하는 수단이라는 의미의 한계 안에 머물러야 한다. 국가기구들도 법의 이러한 자기 겸손성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책무가 있다. 입법부는 내용상으로 정당한 바른 법을 가다듬어야 하고, 사회의 신호 체계로 꼭 필요한 최소한의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행정부는 그 법률의 집행에 있어 평등성과 비례성과 보충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사법부는 권력으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해 법률에의 자기 구속성의 원칙에 따라 구체적 사안마다 정의와 형평을 실현해야 한다.

이 같은 법의 의미와 질서 기능은 자명해 보이지만, 특히 정치적·사회적인 전환기에는 법과 현실의 괴리, 법의 왜곡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십상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후기 현대사회의 파편화된 개인주의 속에서 법의 혼동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의 일상화가 가져오는 학습효과 때문에, 법의 주체들이 거기에 비판 없이 길들 뿐만 아니라 매몰된다는 점이다. 그와 같은 일상화의 위험으로부터의 탈출이 법치 선진화의 정신적 출발점임을 법의 날 함께 우리의 마음에 새겨봤으면 좋겠다.

우려스러운 점은 정권에 입맛을 맞추는 사법기관들에 대한 불신이 시민의 저항을 불러올 정도로 찼다는 점이다. 내부적으로 잘 결속된 이익집단들의 ‘광기에 찬 자기표현’이나 막무가내식의 자기주장이 법인지 정치판인지 분간할 수 없는 흐리멍덩한 상황으로 사회를 몰아가고 사법을 협박하는 비정상이 일상화하면 법치도 바른 방향을 잃고 만다. 그렇게 되면 허울 좋은 민주정치라는 틀 속에서 결국 일인독재가 가능해질 수 있다. 사법 일꾼들이 정치적 편향성에서 벗어나 객관성·중립성·독립성을 스스로 지켜내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민주광장에서도 제왕적 대통령에 의한 문민독재(文民獨裁)는 얼마든지 기승을 부릴 수 있다.

입법부와 사법부와 행정부는 결코 한시적인 한 정권의 권력 의지를 대행하는 기관이어선 안 된다.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대상은 일시적인 정권보다 더 현명한 국민의 마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생명의 가치가 산모의 자기결정권보다 못한 사회, 국방의 의무가 개인의 주관적 양심보다 못한 사회가 어찌 오래갈 수 있을까?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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