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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세 파수꾼’ 김태일 교수, 내달 시행 ‘예타 개편안’ 비판

“비용 대비 편익값 0도 통과 가능
비수도권 졸속 사업 사태 우려
최소 기준 등 안전장치 마련을”

“이제는 경제성이 전혀 없는 사업이라도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를 통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정부에 묻고 싶습니다. 이런 예타를 왜 합니까?”

내달부터 시행되는 정부의 예타 개편안을 두고 무분별한 예산 낭비를 막자는 제도의 도입 취지가 사실상 무력화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태일(55·사진)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23일 서울대 행정대학원 주최로 열린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결정으로 되짚어본 예타의 쟁점들, 그리고 개편안에 대한 평가’ 정책 지식포럼에서 예타 개편안이 정부재정의 방파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정부 예산을 감시하는 시민단체 좋은예산센터의 소장을 맡고 있는 등 학계의 대표적인 ‘혈세 파수꾼’으로 꼽힌다.

정부가 이달 발표한 개편된 지침의 핵심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예타 평가 기준을 달리 적용하는 데 있다. 김 교수는 먼저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개편안을 적용할 경우 기존 방식에서 탈락된 사업들도 무더기로 통과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개편안 하에서는 비수도권 건설사업을 중심으로 정성평가에서 일부 ‘약간 적절’ 점수만 받아낸다면 비용 대비 편익(B/C) 값이 0인 사업이라도 예타를 통과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방만·졸속 지역 사업을 막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실상 사업성이 전혀 없는 사업들이 정부 주도 하에 무더기로 통과될 수 있는 절차가 제도적으로 마련된 것이다. 김 교수는 “B/C값이 0이라도 예타를 통과할 수 있다면 굳이 예타라는 제도를 실시할 이유가 없다”며 “앞으로는 경제성이 전혀 없는 사업들도 통과시킬 생각인지 정부는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념과는 달리 비수도권 지역이 수도권 지역과 비교해 예타 심사에서 크게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김 교수는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예타 통과율을 분석해보면 수도권이 71.6%, 비수도권은 65.3%로 6.3%포인트 차이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타 제도의 도입 취지는 무분별한 건설사업 등으로 인한 예산 낭비를 막자는 것”이라며 “개편 이전의 예타 제도는 이러한 취지를 잘 살려 수행해왔다”고 말했다.

정부는 개편 전과 비교할 때 예타 통과율 자체에 큰 변화는 없을 거라고 내다보고 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안이한 전망’이라며 자칫 방만한 재정지출을 막는 제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예타 통과를 위한 B/C값 최소 기준을 설정하는 등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희권 기자 leehek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