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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사관계 개선위원회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공익위원 권고안을 지난 15일 발표했다. 이 권고안은 합의가 되지 않은 안으로 일종의 공익위원들의 ‘중재안’에 불과하므로 강제력은 없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입법 과정에서 명분 찾기용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커졌다.

노동계는, 우리나라가 ILO 핵심협약 중 제87호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을 비준하지 않아 ‘노동권 보호 후진국’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다른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에서도 불리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조약비준 절차와 관련해 노동계가 ‘선(先)비준 후(後)입법’을 주장했던 점을 고려하면 여당은 이러한 노동계의 요구에 대한 명분용으로 이번 권고안을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선비준은 위헌의 여지가 있음은 물론, 비준된 조약과 국내 노동법과의 충돌 때문에 극심한 법 적용상의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물론, 국회가 결정할 사안이지만 법 개정 후 비준 여부를 결정하는 게 순서다.

문제는, 경사노위가 법 개정과 관련해 전혀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최종 권고안에는 ‘전교조 합법화, 해고자 노조 가입 허용, 5급 이상 공무원 가입 허용, 단체협약 유효기간 3년으로 연장, 파업 시 직장 점거 금지’ 등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그러나 경영계가 요구해 왔던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부당 노동행위 사업주 형사처벌 폐지’ 등의 내용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 권고안이 노동계에 유리한 안이라고 평가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입법론적으로 볼 때는 법 개정 후 조약을 비준하는 것이 법 적용상의 혼란은 물론이고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협약 제87호가 그 목적을 전문에서 ‘ILO 헌장의 취지대로 근로조건을 향상시키고 평화를 확립하는 것’에 두고 있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는 점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즉, 법 제도적으로 ‘근로 조건 향상’과 ‘평화 확립’이라는 두 요건을 모두 충족한 국가들이 이 조약을 비준해야 법 적용상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는 조약 비준에 앞서 법 개정 때 ‘근로 조건 향상, 평화 확립’이라는 2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부당 노동행위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 폐지’ 등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파업 시 대체근로를 전면 금지한 나라는 한국과 말라위 정도이며, 미국과 일본은 부당 노동행위에 대해 민사책임만 묻고 있다.

추가로 ‘전교조 합법화, 해고자 노조 가입 허용, 5급 이상 공무원 가입 허용’ 등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만약 해직자의 노조 가입이 허용된다면 회사와 무관한 전문 노동운동가가 노사 협상을 이끌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5급 이상 공무원의 노조 가입 역시 부작용이 클 수 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유지는 물론 공공개혁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전교조의 합법화 역시 학교를 이념의 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경사노위의 운영위원회의 회의가 남아 있긴 하지만, 이제 국회가 최종 결정해야 한다. 국회는 대의기관이다. 당리당략보다는 국민적 합의를 존중하는 것이 대의기관의 임무다. 경사노위의 권고안을 배제한 상태에서 입법 심의를 하는 성숙한 대의기관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