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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 논설위원

21일 대선 코미디언 당선 유력
내전으로 얼룩진 유럽 최빈국
核 아닌 동맹 부재가 위기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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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1일 우크라이나 대통령 결선 투표가 실시된다. 지난달 31일 치러진 대선 1차 투표에서 30.24% 득표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와 15.95%를 얻은 페트로 포로셴코 현 대통령이 맞붙게 된다. 젤렌스키는 코미디언 출신으로 ‘국민의 종’이란 정치 풍자 드라마에서 정의로운 대통령 역할을 맡으면서 선풍적 인기를 얻은 인물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젤렌스키 당선이 유력하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거센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포로셴코 대통령은 역전시킬 수 있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경험의 젤렌스키에게 불안감을 느끼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신선해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젤린스키는 이스라엘에 도피 중인 금융·언론 재벌 이고르 콜로모이스키의 ‘얼굴마담’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우크라이나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진 않다. 크림반도는 사실상 러시아에 넘어간 상태이며, 동부 우크라이나 지역의 친러 반군과 교전 중단 및 평화 정착을 골자로 한 ‘민스크 협정’을 2014년 9월과 2015년 2월 두 차례 체결했지만, 내전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5년간 내전에서 1만3000명가량이 사망하고, 2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경제사정도 어렵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964달러밖에 안 되는 유럽 최빈국 중 하나다. 이에 많은 우크라이나인이 해외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는데, ‘세계 유흥업소 종업원 공급지’로서의 오명을 떨치고 있다. 이 와중에도 극소수 올리가르히(정치·경제 융합 과두세력)는 서구 재벌을 능가하는 초호화판 생활을 영유하고 있으며, 대형 부정부패 스캔들이 계속 터져 나온다.

우크라이나가 국제적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2014년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때문이다. 러시아는 크림반도 주민 대다수가 병합에 찬성한 이상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크림반도는 러시아 땅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크림반도는 1783년부터 러시아 영토였으며 1954년 행정적 편의에 따라 같은 소연방 소속이었던 우크라이나 관할로 넘겨줬던 것이기 때문에 되돌려받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옛 소련의 수많은 지역이 분쟁지역이 될 수 있다. 유라시아 대륙 자체가 역사적으로 민족·영토 분쟁의 도가니였기 때문이다.

1991년 12월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 3국은 벨라루스의 벨라베자 숲에 모여 옛 소련 연방을 구성하던 15개 국가의 주권과 영토적 통합성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기본 골자로 소연방 해체에 합의했다. 또, 조지아를 제외한 옛 소련 국가들이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벨라베자 협약’을 승인했다. 그런데 근육을 회복한 러시아가 ‘벨라베자 체제’를 부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대국 소련으로의 복귀를 염원하는 러시아인들에게 벨라베자 체제는 치욕의 상징일 수 있다. 그러나 ‘베르사유 체제’에 불만을 가진 나치 독일이 1938년 체코의 수데텐란트 병합을 요구했던 역사적 경험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서구 유럽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공식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문제로 러시아에 대해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회복하기를 바라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미국에서는 존 미어샤이머 교수를 중심으로 불간섭주의를 옹호하는 ‘현실주의’ 학파의 입김이 강해지고 있는데, 이들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영향권(sphere of influence)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나토의 과도한 동진(東進)은 미국의 국익에 맞지 않으며, 이제 유럽 방위는 유럽이 맡는 것이 정상이란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독일·프랑스 등은 우크라이나 문제가 발틱 3국 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며 미국의 개입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작 자신들은 국내 여론 때문에 군사비 지출에 인색한 상황이다. 또, 서구 유럽의 높은 러시아 가스 의존도도 대러 강경 정책을 펴는 데 장애 요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시할 수 있는 원인을 우크라이나의 핵 포기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핵을 계속 보유하고 있었더라도, 크림반도 병합과 동부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은 ‘하이브리드전(戰)’ 형태의 내전에서 핵을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최소한의 억지력도 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와 같은 이웃 강국이 ‘현상변경세력(revisionist power)’이 돼 기존 국제질서를 흔들 때, 우크라이나와 같은 ‘완충국가(buffer state)’가 자주와 자립을 위해 세력 균형을 이루는 방법은 ‘외적 균형(external balancing) 전략’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전략을 구사하기 위한 확실한 군사동맹이 없다는 점이 우크라이나의 비애다. 한국은 다행히 지금까지는 한·미 동맹이란 외적 균형 전략을 통해 안보와 번영을 누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