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990년 당시 대농 소속 박미희가 블로킹을 피해 스파이크를 시도하고 있다.

‘한계’ 뛰어넘는 박미희 감독

박미희(56) 흥국생명 감독은 한국 여자배구 사상 최고의 센터로 손꼽힌다. 센터는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는 높은 ‘벽’을 세워야 하기에 대부분 장신이다. 박 감독의 신장은 그러나 센터로는 크지 않은 174㎝. 박 감독은 그런데도 정확한 타이밍으로 스파이크를 막아냈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선 수비상을 받았다. 상대의 허점을 빠르게 파악하는 데 능해 공격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뽐낸 박 감독은 지금도 공수를 겸비한 최고의 센터로 평가받고 있다.

화려한 이력을 보유한 박 감독은 센터 조련에도 일가견이 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흥국생명에서 박 감독의 지도를 받은 김수지(IBK기업은행)는 V리그 특급 센터로 거듭났다. 김수지는 2016∼2017시즌 생애 처음 V리그 베스트7에 센터로 선정됐다. 2017∼2018시즌엔 신인 센터 김채연이 박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기량이 급성장, 신인상을 받았다. 김채연은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5순위로 지명됐기에 신인상 후보로는 꼽히지 않았다.

박 감독은 “내가 센터 출신이기에 센터 포지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면서 “센터 육성 욕심이 크기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그래서 센터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흥국생명은 젊고 힘 있는 센터가 도약해야 한다. 박 감독은 “주축 센터 김세영(38)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면서 “앞으로 20세인 김채연과 19세인 이주아가 중앙을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박 감독은 2014년 흥국생명 사령탑으로 부임한 직후 선수들이 자신을 따라오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스타 출신 감독의 한계. 박 감독은 “처음엔 ‘왜 내가 설명한 것을 이해하고, 실행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내가 원하는 플레이가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개인마다 다른 재능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것. ‘스타 선수는 뛰어난 지도자가 되기 어렵다’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표적인 이유다.

박 감독은 그러나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 ‘노선’을 수정했다. 박 감독은 “팀을 맡은 지 2년이 지나 선수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면서 “이젠 선수의 기량을 보지 않고 노력, 의지력을 유심히 살핀다”고 말했다. 박 감독이 ‘눈’을 뜬 뒤 흥국생명은 상승 곡선을 그렸다. 2014∼2015시즌 4위, 2015∼2016시즌 3위에 머물렀던 흥국생명은 2016∼2017시즌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2018∼2019시즌엔 정규리그 1위,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달성했다.

박 감독은 올해로 사령탑 6년 차다. 감독 박미희는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박 감독은 “시행착오는 코치 경험 없이 바로 감독을 맡았기 때문”이라면서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벽’을 만나고 있고 그 벽을 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태백=허종호 기자 sportshe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