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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는 되는데 실천이 쉽지 않아요.”

세종의 수긍화법을 배우고 연습한 학생들의 반응이다. 부정적인 말투로 대화를 시작하는 상대에게 일단 수긍하기, 즉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라고 말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무심코 던진 부정적인 말을 웃어넘기고 다음 단계, 즉 “그런데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뭔가요”라는 데까지 나간 학생도 꽤 있었다. 그들은 일단 수긍하고 상대의 속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세종의 화법이 특히 가족 간 대화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준다고 말했다.

상대방의 속마음을 열게 하는 세종의 또 다른 비법은 질문하기였다. 세종은 말끝마다 “경들의 생각은 어떤가?”라고 하여 신하들을 대화에 초청하곤 했다. 양로연 때 노인들을 계단 위에서 맞이할지 내려서서 기다리는 게 좋을지 하는 것부터, 기근을 구제하는 방법과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예법에 이르기까지 세종이 묻지 않는 사항은 없었다. 세종실록에서 자주 보이는 ‘하여(何如)’라는 의문형 어투는 신하들의 말문을 여는 그의 화법이었다(‘하여왕(何如王) 세종’).

프랑스 정치철학자 메를로 퐁티에 따르면 질문은 그 자체로 듣는 사람의 영감(inspiration)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대화는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 과정으로 이뤄져 있는데, 주고받는 질문은 스스로를 생각하게 만들뿐더러 듣는 사람의 창의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메를로 퐁티, <현상학과 예술>)

이미지 크게보기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세종 역시 질문을 통해 끊임없이 인재들의 창의력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찬반 의견을 묻는 단순 질문보다는 생각하고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게 하는 질문을 자주 던졌다. 가령 1433년 5월 파저강토벌의 전승보고를 들은 직후 세종은 “어떻게 하면 이 공을 보전하고 후환을 없게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즉위 초반에 “중국역법 책에 나온 그 시간에 왜 일식현상이 일어나지 않느냐?”라고 물은 것도 연구와 숙려를 거듭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집현전 학사들이 밤새 연구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끊임없는 왕의 질문 때문이었다.

세종의 대화에서 특징적인 것은 중요한 의견을 놓치지 않는 섬세한 헤아림이다. 아무리 질문을 하고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눈다 하더라도 좋은 의견을 흘려버린다면 한낱 잡담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재들의 속마음, 즉 그들이 가치 있게 여기고 잘할 수 있다고 여겨 제안하는 것을 세종은 놓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재위 21년째인 1439년 6월 사헌부에서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역사기록(史籍)을 분산 배치하자고 제안했다. 사헌부는 이때 9개의 제안을 했는데 놀랍게도 세종은 바로 그 제안, 즉 실록 등을 몇 본 더 만들어서 각 도의 명산에 나눠 보관하자는 의견만 채택했다. 만약 그때 이 의견이 채택되지 않았더라면 임진왜란 때 실록은 어찌 됐을까?

세종은 어떻게 그런 대화민감성을 가질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잘 듣고(聰) 주도면밀한(敏) 그의 성품을 들 수 있다. 태종은 세종의 그러한 총민함이 배우기를 좋아하는(好學) 태도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경(經)과 사(史)에 대한 폭넓은 독서가 말을 헤아리는 능력을 키운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일 중심의 사고방식이다. 세종은 자신이 나랏일을 그르칠 경우 태조와 태종, 나아가 형 양녕까지 욕되게 만든다고 봤다. 여러 윤음(綸音)에서 보이는 강한 소명의식이 그로 하여금 인재들의 말을 집중해서 듣게 하고 좋은 의견을 채택하는 대화민감성을 높였다. 질문을 던지고 잠시 기다렸다가 좋은 의견을 놓치지 않고 채택하는 대화법만 실천해도 각 분야의 인재들이 훨씬 신명 나게 일하지 않을까.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