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반(反)역사 행태가 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지난 6일부터 서울 세종로의 정부청사, 외교부 청사, 의정부 터 발굴 현장, 교보생명 건물 등에 독립운동가들의 대형 초상이나 전신 그림을 내걸면서 이승만 전 대통령은 뺀 것으로 11일 보도됐다. 임정(臨政) 수립 역사를 기린다면서, 정작 그 역사에 가장 중요할 수 있는 임정 초대 대통령은 없던 인물로 치부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임정과 무관하거나 계열을 달리한 독립운동가는 대거 포함시켰다는 사실은 그 저의를 더욱 의심할 수밖에 없게 한다. 정부청사 외벽의 가로 100m, 세로 17m 크기 현수막에 전신 그림으로 담긴 10명 중의 여운형만 해도 그렇다. 그는 1919년 상해 임시의정원 의원과 외무부 차장으로 활동했지만, 해방 후에는 임정의 정통성마저 인정하지 않았던 인사다. 1920년 사회주의 계열인 상해파 고려공산당과 이르쿠츠크 고려공산당에 가입했고, 해방 후에는 조선인민공화국 부주석과 좌파 연합단체인 민주주의민족전선 공동의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그런 여운형은 떠받들면서, 1919년 4월 11일 구성된 상해임시정부의 최고위직인 국무총리, 4월 23일 선포된 한성임시정부 집정관총재, 9월 11일 출범한 상해 통합임시정부 대통령 등으로 활동한 이승만은 한사코 역사에서 지워버리려고 하는 식이다. 이승만이 독립운동 과정에 상해 임정을 국제사회에서 한국 대표로 승인해주기를 미국 정부에 거듭 요청했으나, 끝내 거절당한 사실 등에도 눈을 감지 않는다면,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위원회 측은 “임정뿐 아니라 독립운동 역사에 관심을 갖고 기념하는 취지로 예술가들에게 부탁해 전시했다”고 둘러댔으나, 책임 떠넘기기로 들릴 뿐이다. “특정 인물을 넣거나 빼라고 한 적은 없다”면서도 “대상 그림에 대해 내부 결재 절차를 밟았다”고 자인해, 앞뒤 안 맞는 변명을 덧붙인 이유도 달리 있기 어렵다. 학계 안팎의 논란에도 상해 임정 수립을 대한민국 건국 시점으로 주장해온 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남북 정상회담 후엔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엄연한 역사까지 왜곡하는 행태를 더 이상 방관·방조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