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박현수 조사팀장

국기(國旗)는 그 나라의 얼굴이고 존엄이다. 세계 각국이 국기를 제정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 국가로 발전하면서부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876년 1월 국기 제정 논의가 처음 있었다. 일본 군함 운양호가 강화해협을 불법침입해 포격한 운양호사건이 계기가 됐다. 이를 빌미로 강화도조약 체결 때 일본은 ‘일본 국기가 게양된 운양호에 포격했다’며 트집을 잡았다. 이후 1882년 박영효 등이 수신사로 일본에 갈 때 태극·사괘 도안이 그려진 기를 만들었고, 숙소 건물에 기를 게양했다. 이때부터 태극기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고종은 1883년 3월 6일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공포했다.

외교부가 지난 4일 열린 한·스페인 차관급 회담 행사장에 ‘구겨진’ 태극기를 세워 비난을 샀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나사가 풀렸다는 말이 나왔다. 대한민국 외교부의 현 수준을 말해준다. 작은 일을 소홀히 하면 큰일도 그르치는 법이다. 외교부는 책임을 물어 담당 과장을 보직에서 해임했으나 이 정도 선에서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기법’ 제10조는 ‘국기를 게양하는 기관 또는 단체의 장 등은 국기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아니하도록 국기·깃봉 및 깃대 등을 관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정면으로 위반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런 정신 상태로 어떻게 외교를 제대로 하겠는가. 앞서 지난 2일 경기 수원시 한 국기게양대와 3·1운동 100주년을 하루 앞둔 2월 28일에도 제천시 장평교에 게양된 태극기 25개가 모두 ‘찢어진’ 채 방치돼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래저래 요즘 태극기가 수난을 당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기법 시행령 제22조를 보면 ‘국기에 때가 묻거나 구겨진 경우에는 국기를 훼손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국기를 세탁하거나 다림질하여 게양·보관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11일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날이다. 당시 임시의정원의 기념사진에도, 100년 전 3월 1일 전국 에서 만세운동을 벌일 때도 태극기는 민족혼을 불태웠다. 그러나 최근 실시한 한 조사에 따르면, 성인 3명 중 1명은 집에 태극기가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또 다른 조사에선 국기 게양일에 ‘매번 게양한다’는 응답자는 22.4%에 그쳤다. 외교부가 구겨진 태극기를 내걸 지경이니 이상한 현상도 아니다. ‘태극기 수호 부대’라도 만들어야 태극기가 지켜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