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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학창 시절 읽었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유비와 손권이 이끄는 10만 연합군은 조조의 100만 대군과 적벽에서 맞닥뜨린다. 수적 열세인 연합군의 전략은 ‘화공(火攻)’이나, 때는 북서풍이 부는 한겨울이라 쓰기 어려웠다. 연합군 책사 제갈량은 “동짓날부터 사흘 동안 거센 남동풍을 빌려 오겠다”며 기다릴 것을 제안한다. 약속한 날에 남동풍이 불자 조조군은 쏟아지는 불화살에 결국 궤멸한다.

소설 속 연합군처럼 우리나라도 남동풍을 애타게 기다린다. 최근 ‘미세먼지 범부처 프로젝트 사업단’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도권 미세먼지의 국외 유입 비율은 남동풍이 부는 여름에 30%, 서풍이 부는 겨울과 봄에는 80%라고 한다. 국외에서 들어오는 미세먼지의 영향이 크다는 의미다. 국제 공조가 필요해 지난 3월 말 중국 정부 당국자를 만나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기술 개발, 인력 교류, 생태산업단지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국내적으로는 발생 미세먼지로 인한 추가적인 대기 질 악화 방지가 과제다.

석탄 발전(發電)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에너지전환 정책은 미세먼지 감축에 효과적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2040년까지의 전 세계 신규 발전 설비 투자 전망에 따르면, 재생에너지가 전체 에너지의 약 69%를 차지하며 각각 9%인 원자력과 석탄 발전을 압도한다. 에너지 전환이 미세먼지, 기후변화 등 환경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전 세계적 흐름인 것이다. 우리 정부도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20% 달성을 목표로 ‘3020 이행계획’을 수립해 확대 정책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신규로 설치된 재생에너지 설비는 약 3기가와트(GW)로 전년 대비 45% 증가하며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은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혁신성장의 원동력이다. 덴마크는 ‘풍부한 바람’에 주목해 풍력산업 육성에 힘쓴 결과 전체 발전량의 43%를 풍력이 담당하고 있고, ‘베스타스’라는 세계 1위 풍력기업도 탄생시켰다. 이 기업의 2017년 매출은 약 100억 유로(약 13조 원)에 이른다. 덴마크 국내총생산(GDP)의 3.5%에 해당하는 규모다. 친환경과 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사례다. 한편, ‘세계의 굴뚝’으로 불리는 중국도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글로벌 상위 10개 태양광 모듈 기업 가운데 8개를 보유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도 세계적인 추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지금의 반도체나 조선 산업처럼 재생에너지 산업을 다음 세대 먹거리로 키워야 한다. 제품 단가 하락, 해외 기업의 국내 진출 확대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업계의 현실도 타개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 6개월간 업계와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재생에너지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이달 초에 발표했다. 탄소인증제를 도입해 품질 중심 경쟁 구도로 전환하고, 부유식 해상 풍력 등 차세대 기술을 확보하며, 해외 전략시장별로 맞춤형 수출 지원을 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국내 태양광산업은 이미 세계적인 기술 수준이고, 풍력산업은 조선과 플랜트라는 경쟁력 있는 연관 산업이 뒷받침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도 갖춰져 있다. 기술을 혁신하고 산업 생태계를 재정비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히 도약할 수 있다.

절대 불리했던 전쟁의 양상을 한순간에 역전시킨 제갈량의 남동풍처럼, 이번 대책이 우리나라를 ‘글로벌 재생에너지 기술 강국(强國)’으로 날아오르게 하고, 한반도 상공의 미세먼지도 멀리 날려 보낼 수 있는 시원한 바람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