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 강원 일원의 산불은 꺼졌지만, 차분히 따져봐야 할 과제들을 남겼다. 그중 하나가 한국전력공사의 책임 여부와 그 정도이다. 피해가 가장 컸던 고성·속초 산불의 발화가 전신주 개폐기 부분의 불꽃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해당 전신주의 개폐기와 케이블, 피뢰기 등을 수거해 정밀 감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피해를 키운 것은 공교롭게도 그 시간에 불던 강풍이었지만, 한전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난 배상 책임이 발생할 수도 있다.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도 송전선이 발화 원인으로 지목됐는데, 이 때문에 해당 전력회사는 파산 위기에 몰렸다.

그런데 개폐기 점검이 예산 삭감으로 소홀했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실이라면 한전 책임이 더 커질 수 있다.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구간의 개폐기에 대한 ‘이상 없음’ 판단 1시간17분 뒤에 불꽃이 발생했다. 그날은 ‘강풍 특별 순시’였고, 하루 전에는 ‘건조기 산불 예방 순시’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모두 육안 점검이었고, 정밀 점검하는 ‘광학카메라 진단’은 2017년 11월 ‘양호’ 판단이 마지막이었다는 것이다.

윤 의원과 한국당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이후 한전의 수익성 악화로 인해 배전(配電) 설비의 유지·보수 예산이 2017년 1조8600억 원에서 지난해 1조4400억 원으로 4000억 원 넘게 급감(急減)했다. 물론 한전 측은 계획수선비는 늘고 있다면서 ‘비상경영’과 배전 설비 예산은 관계없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배전 점검 관련 예산의 감소가 정밀 점검 대신 육안 점검을 늘리는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추정할 수는 있다. 초우량 기업 한전은 지난해 영업적자 2080억 원을 기록했고, 올해는 2조4000억 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한전 부실이 배전 부실 점검을 불렀고, 화재 발생 위험성을 높였다는 의혹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