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등 지지부진 진행 질타
“노딜땐 영국인들 불법체류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하고 EU와 탈퇴조건 등에 대한 합의를 끝내고도 의회 승인을 받지 못해 계속 시행날짜를 미뤄가며 표류 중인 영국에 대해 유럽 각국 정상들의 쓴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 ‘노 딜’ 브렉시트 발생 시 유럽에 머물고 있는 영국인들의 합법적 거주 권한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내부보고서가 공개돼 파장이 커지고 있다. 4일 가디언,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레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영국이 오는 10일 열리는 EU 정상회의 때까지 내부 합의안을 제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날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영국 하원은 브렉시트 추가 연기를 위한 정책안을 가결했지만 메르켈 총리는 “신뢰할 수 있고 현실적 방안이 제시돼야 (추가 연기가) 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메르켈 총리의 발언은 의향투표와 기존 합의안 승인투표를 매번 열지만 모두 부결 처리하면서 계속 표류하고 있는 영국 정치권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메르켈 총리 외에 다른 유럽 정상들도 영국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직·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브렉시트와 (자국 내) 카탈루냐 독립운동은 모두 거짓말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유럽이, 혹은 스페인이 우리 것을 빼앗고 있다는 선동에 사태가 발생했고, 이에 대한 대처는 매우 어렵다”고 비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지난 2일 “프랑스는 브렉시트 시한을 장기 연장하는 데 열려 있지만, 연장이 확실한 것도 아니며 시한이 자동 연장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상 영국이 노 딜을 선택했다고 봐야 하고 이를 막을 수 없다”고 영국의 지지부진한 승인 절차를 강도 높게 질타했다.

한편 가디언은 이날 EU 내부문서를 인용해 영국이 합의 없이 노 딜로 EU를 떠날 경우 EU 지역에 거주하는 100만여 명의 영국인 중 상당수가 불법체류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U는 노 딜 브렉시트가 발생했을 때 각 지역에 사는 영국민들의 체류 지위 등이 갑자기 변경돼 혼돈이 생기지 않도록 국가별로 대비할 것을 권고했지만, 몇몇 국가의 경우 국내법상 이유로 이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EU 가맹국 중 9개국을 제외한 17개 국가에서는 영국인에게 부여될 수 있는 거주 지위가 ‘임시’에 불과해 몇 년 내 추가 협정이 없다면 이들의 거주 상태가 다시 위협받을 수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