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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정치는 ‘말의 예술’이기도 하다. 박지원 의원이 지난 2016년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대화를 위해 줬던 돈이 북한 핵 개발 자금이 됐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주장에 “경복궁이 무너지면 대원군 묘소 가서 따져야 하느냐”고 맞받아 논란을 잠재운 적이 있다. 명대변인으로 이름을 날린 박희태 전 의원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내로남불)’ ‘정치 9단’ ‘총체적 난국’ 등의 촌철살인 어록을 많이 남겼는데 현재도 회자되고 있다. 고 김종필 전 총리의 ‘자의 반 타의 반’‘핫바지’ 등도 그렇다.

최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조어(造語) 정치’로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2월 국회 원내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정국 파행까지 빚었지만, 정치적으론 재미를 봤다. 나 원내대표는 이후 탄력이 붙었는지 매일같이 조어를 내놓고 있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집 3채, 포르쉐’ 발언으로 비난을 받자 “국민소통수석이 아니라 국민 분통을 터뜨리게 하는 ‘국민분통수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또,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하려 한 데 대해 “북한 아니면 적폐밖에 모르는 ‘북적북적 정권’이라는 말이 나오게 한다”고 했다. 장관 후보자 2명의 낙마에도 불구하고 조국 민정수석이 사퇴하지 않고 버티는 데 대해선 “과거에는 대통령 밑에 소통령이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조통령’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조 수석과 조현옥 인사수석을 겨냥해서는 ‘조·조 라인’, 김연철 후보자는 ‘막말 연철’,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위선 영선’ ‘평창 패딩 영선’이라는 네이밍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격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직설적인 말을 서슴지 않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짧은 메시지를 보내는 트위터를 이용해 전 세계를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그러나 깊이가 없는 말장난 식의 조어는 수명이 짧다. ‘정치인은 선비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가져야 한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처럼 정치철학이 담겨 있어야 울림도 길고 크다.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명연설과 명문의 달인, 윈스턴 처칠은 이런 말도 남겼다. ‘짧은 표현(short words)이 좋고, 친숙한 것(old words)이면 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