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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수의 글로벌 경제 이야기 - (30) 19개 회원국 ‘올 성장률 1.1% 전망’ 쇼크

ECB, 금리동결 연말까지 연장
독일마저 작년 4분기 0% 성장

단일통화탓 환율정책 등 한계
그리스 등 10년 넘게 금융위기

회원국 경제 불균형 여전히 커
伊 새 정부선 ‘유로존 탈퇴’ 공약

EU의 미흡한 ‘경제적 수렴’이
영국민의 ‘브렉시트’ 선택 불러

“우리가 뒷북을 칠 줄은 몰랐다.” 지난달 유럽중앙은행(ECB)의 마리오 드라기 총재가 통화정책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한 고백이다. ECB는 당초 마이너스 지준금리를 포함해 현 정책금리를 올여름까지 동결하겠다는 작년 말 발표를 뒤집고 금년 말로 연장했다. 덧붙여 ‘심각한 경제적 충격’이 일어나지 않는 한 장기대출프로그램(TLTRO)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11월의 공언도 뒤집었다. 지난 몇 개월 사이에 ‘심각한 경제적 충격’이 일어난 것이다. 국제기구를 비롯한 모든 기관이 경쟁적으로 금년 유로존 경제를 하향 전망했다(그림). 3월 ECB는 금년 유로존 19개국 성장률을 1.1%로, 유럽연합(EU)은 1.3%로 내렸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하향 수정 전망을 했다. 재작년 2.4% 성장을 정점으로 빠르게 식고 있다.


#1. 두 주 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동결은 뉴스라고 할 것도 없었다. ECB의 행보에서 이미 예견됐기 때문이다. 이제 글로벌 경제를 이끌었던 선진국의 성장동력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또다시 일어난 안전자산 선호로 독일 국채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졌고 미 국채 장단기 수익률 역전이 일어났다.

언론은 유로존이 부진한 배경으로 독일을 지목하고 있다. 유로존 국내총생산(GDP) 29%(EU의 21%)를 차지하는 독일은 작년 4분기 0% 성장해 침체는 간신히 면했으나 작년 성장률이 재작년보다 0.7%포인트 감소한 1.5%로 내려앉았다. 경제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큰 수출부문(GDP 대비 50%)의 성장기여도가 낮은 데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 향후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 중국, 영국의 수입수요가 위축된다면 하방 위험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작년 7월을 피크로 내리막을 가다 1월부터 50 이하로 떨어져 3월(44.7)에는 주저앉았다. 주요 예측기관은 금년 독일 성장률은 1∼1.3%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유로존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유럽경제에 대한 비관론은 중심국의 부진 때문만은 아니다. 그 뿌리는 19개국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유로(Euro) 나아가 그 모태인 28개국의 EU가 당면한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한다.


#2.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쳤던 2008년 11월 파이낸셜파임스(FT) 칼럼니스트 볼프강 문차우는 ‘이제 유로존의 혜택을 깨달았다’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위기는 궁극적으로 보다 강력한 경제 거버넌스를 만들어 낼 것이며 유로존은 확대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시 외채위기에 몰린 아이슬란드가 기준금리를 20% 가까이 올렸고, 유로화, 스위스프랑화로 주택담보대출을 끌어들여 한때 집값이 폭등했던 헝가리는 재앙을 맞았으며, 덴마크는 투기적 공격을 당했다.

그러나 문차우의 예측과 반대로 오히려 위기는 유로존에서 본격화됐다. 3년 만에 아이슬란드는 성장궤도로 재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5개국 가운데 아일랜드를 제외한 4개국이 2013년까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위기 전보다 GDP의 28%가 줄어들었던 그리스는 2017년에야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현재 경기침체를 맞은 이탈리아가 1% 성장을 넘어선 것은 2016년이다. 한때 55%를 초과했던 스페인의 청년실업률은 지금도 위기 전 수준의 2배 가깝다.

IMF는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을 총동원해 지원했다.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3국에만 920억 달러를 공여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가 스캔들로 쫓겨나자 유로존 위기극복을 명분으로 같은 프랑스인인 크리스틴 라가르드가 이어받았다. 마틴 펠드스타인이 완고한 치과의사에 비유했을 정도로 한국 등에 가혹한 구조조정을 들이댔던 동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와 너무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로존 위기의 여진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2012년 국채교환으로 1500억 유로의 채무 탕감을 받았던 그리스는 작년 다시 2032년까지 채무 상환을 연장받았지만 IMF는 더 많은 채무 탕감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오성운동과 동맹당이 연정한 이탈리아 신정부는 ECB가 보유한 국채 2500억 유로의 채무 면제를 이슈화했다.


#3. 유로존의 깊은 상처는 단일통화라는 공동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빚을 갚지 못해 일어난 위기는 우선 씀씀이부터 줄여야 극복 가능하다. 위기 수습을 주도했던 IMF, 유럽위원회(유럽공동체(EC), EU를 대변하는 기구)와 ECB가 남유럽 재정위기 국가들에 재정개혁을 요구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성장 없는 재정개혁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단일통화가 성장을 해외에서 찾는 경로를 차단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일찍 극복한 것은 IMF의 고금리 정책에도 불구하고 폭등한 원화환율로 성장동력을 수출에서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로화 환율은 위기 당사국들에 수출활로를 제공할 정도의 수준에 크게 미달했고 대신 재미는 독일이 보았다. 재정개혁이 유일한 대안인 상황에서 증세와 정부지출삭감에 따른 긴축재정은 총수요를 위축, 경기는 더 악화됐고 세원이 줄어 다시 정부 재정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더욱이 주조권이 없는 정부로서는 돈을 찍어 나랏빚을 청산하는 시뇨리지도 불가능했다.

유로존에 애초부터 흠이 있음은 위기가 일어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됐다. 유로존은 공동통화를 사용하되 각국이 주권을 행사하고 그 책임을 지는 일종의 국가연합체(Confederate)다. ECB에는 유동성 위기 시 은행에 대해 국채와 같은 안전자산을 담보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최종대부자 기능이 없다. 자칫 유동성 위기를 빌미로 ECB가 회원국 국채를 마구잡이로 사들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유로존 위기 때 PIIGS 은행의 예금이 독일 등 안전한 나라의 은행으로 유출되는 뱅크런이 일어났다. 이 은행들이 그 나라 국채를 다량 보유해 부실화의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유로존이 와해될 가능성 때문이었다. 유로존을 살리기 위해 Fed가 그랬던 것처럼 ECB도 PIIGS 은행과 증권시장을 상대로 다양한 유동성 지원프로그램을 가동, 사실상 최종대부자 기능을 수행했다.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 감독의 책임이 전적으로 그 금융회사가 속한 나라에 있음은 외견상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위기에 몰린 스페인계 은행에 대한 자금지원 시 지급보증을 한 스페인 정부의 국채 수익률이 폭등, 결과적으로 재정개혁이 더 어려워지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2014년 ECB는 은행에 대한 통합감독기구(SSM)를 설치, 유로존 자산의 85%를 소유한 128개 은행에 대한 감독권을 유로존 19개국 정부로부터 이양받았다.

재정통합(Fiscal union)은 남아 있는 뜨거운 감자다. 이 주장의 논지는 세 가지다. 우선, 금융안전망은 최종대부자만으로는 부족하며 예금보험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예금보험제도는 예금보험기금이 필요한데 부보기관으로부터 보험료를 받아서는 충분치 않으며 궁극적으로 재정이 투입돼야 한다. 다음, 경기변동에 19개국이 단일 예산으로 일사불란하게 대응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따라서 공적자금이나 실업보험금을 19개국 정부가 공동으로 조성해야 한다. 셋째, 유로존 안에서 지역적 불균형을 막기 위해서는 재정의 이전(移轉)이 필요하다. 이 주장은 결국 유로존은 국가연합체가 아닌 미국과 같은 연방국가가 돼야 한다는 것에 다름없다.


#4. 유로가 출범한 1999년 로버트 먼델은 최적통화지역이론에 대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최적통화지역은 자신의 경제적 이해에 따라 단일통화를 채택한 지역을 말한다. 최적통화지역은 충격의 대칭성과 시장통합의 두 잣대로 만들어진다. 전자는 단일통화지역이 유사한 경제환경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산유국과 비산유국, 산업적 특성이 다른 나라들이 단일통화를 채택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시장통합은 생산물시장뿐 아니라 생산요소시장도 포함한다. 한 나라에 불황이 와 실업이 늘어날 때 다른 나라로 일자리를 찾아 손쉽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언어가 다르고 문화 환경에 차이가 많다면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데 장애가 된다.

최적통화이론에 비춰 볼 때 유로존은 실패했다. 무엇보다도 유로존이 단순한 국가연합체로서는 존립할 수 없음을 스스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신정부는 유로존 탈퇴를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차라리 독일이 나가는 것이 낫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유로존을 탈퇴하거나 해체하는 것은 그 결과를 가늠하기 어렵다. 유로존에서 차지하는 GDP 비중이 2% 남짓한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날 가능성이 제기되자 글로벌 경제는 크게 흔들렸다. 복잡하게 얽힌 금융의 연계 때문이다. 유로존 협상에서 비참여(Opt-out) 권리를 얻었던 덴마크는 자국 통화 크로네(Krone)를 유로화에 고정하되 유로존에는 합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덴마크가 고정환율제도를 버리는 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마치 루비콘강을 건너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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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954년 6개국이 결성해 유럽석탄철강공동체에서 출범한 EU는 19년 뒤에야 합류한 영국과 6년 전 크로아티아를 포함해 28개국으로 늘어났다. 1980년대부터 EU의 통합과 확장은 계속됐다. 경제적 동기에서 단일시장에 관심이 있었던 영국은 협상 과정에서 국경조약과 단일통화를 포함, 4개의 비참여 권리를 얻어냈다. 동유럽의 체제전환국들이 EU에 가입하면서 이민자들이 국내로 대거 유입되자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선택했다.

영국 국민이 선택했지만 스스로 혼란에 빠진 브렉시트의 이면에는 EU가 공동시장, 국제교역, 경쟁과 같은 경제적 통합보다는 정치적 통합으로 가고 있다는 강한 경계심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1988년 고 마거릿 대처 총리의 부르제 연설의 한 구절에서 잘 드러난다. “우리는 영국의 국경을 성공적으로 확장하지 못했다. 대신 브뤼셀에서 새로운 지배력을 행사하는 유럽의 초국가(현재의 EU이며 당시 EEC)가 유럽 차원에서 다시 국경선을 정해 주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EU의 확장에 비해 당초 기대했던 경제적 수렴은 미진하다. 혁신과 창출의 장벽이 두껍고, 여전히 규제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구조개혁은 EU가 당면한 최대의 도전이다. 그러나 그것은 국내 정치가 해결해야 할 몫이다.

EU의 핵심기구인 유럽의회 선거가 다음 달 하순에 실시된다. 5년마다 EU 회원국 국민이 직접투표하는 선거에 EU와 유로존의 미래가 달렸다. 작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웨덴, 슬로베니아 총선에서 약진했던 반(反)EU 극우정당이 미는 후보자가 어느 정도 의석을 얻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5월 선거의 결과에 따라 글로벌 경제는 또다시 요동칠 수 있다. (문화일보 3월 6일자 24면 29 회 참조)

성균관대 명예교수, 전 한국경제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