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학생들 유명 사립고에 몰려
뒤늦게 학교에 선발재량권 부여

우리나라보다 앞서 고교평준화 정책을 시행한 일본은 2000년대 들어 고교평준화 정책을 포기하는 기조로 전환했다. 일본은 지난 1967년, 지나친 입시 경쟁과 고교 서열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한국의 고교평준화 정책과 비슷한 학군제를 도입했다. 학군제는 사립학교를 뺀 공립학교의 학군 내 추첨 배정을 내용으로 한다.

일본은 학군제 도입 후 예기치 못한 변화를 겪었다. 명문 공립고를 선택할 수 없게 된 우수 학생들이 학군제가 적용되지 않는 유명 사립고로 몰린 것. 단적인 예로 1964년 도쿄대에 193명을 진학시킨 히비야(日比谷) 고등학교는 30년 만인 1993년에는 도쿄대에 고작 졸업생 1명만 진학시키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2002년부터 학생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키우자는 취지로 도입된 ‘유토리’ 교육은 학력 저하까지 부채질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6년 기준 국제학습성취도 조사(PISA)에서 일본 학생들의 ‘수학적 응용력’은 3년 전 같은 조사 때보다 4계단 떨어진 10위를 기록했다. ‘독해력’은 14위에서 15위, ‘과학적 응용력’은 2위에서 6위로 하락했다.

뒤늦게야 일본 문부성은 지난 1994년 공립학교의 학교별 단독선발제 도입 및 학교별 선발고사 출제권 부여 등 학교별 재량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모든 공립학교에 적용했던 학군제를 폐지했다. 부작용만 남긴 유토리 교육도 지난 2009년 시행 7년 만에 중단됐다.

교육 전문가들은 독일, 핀란드 등 일부 유럽 국가처럼 대학 평준화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일본 사례가 말해주듯 고교 평준화는 큰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자율형사립고(자사고)는 고교 평준화의 폐해와 학교를 믿고 보낼 수 없다는 학생과 학부모의 불만이 늘어나면서 도입된 제도인데,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이를 원점으로 돌리는 건 심각한 부작용만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세계 어느 나라를 보아도 좋은 교육 모델은 사립에서 나오지 공립에서 나오지 않는다”며 “별도 지원 없이도 잘 운영하는 자사고를 없애는 건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좋은 교육 모델의 싹을 잘라버리는 결과”라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