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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해치’

SBS ‘해치’는 왕자 연잉군이 임금 영조가 되는 과정을 그린 사극이다. 보다 보면 SBS 사극이라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전형적인 MBC 사극 같기 때문이다. 대본을 MBC 사극을 대표하는 김이영 작가가 썼다. MBC의 ‘허준’ ‘상도’에 보조작가로 참여하고 역시 MBC의 ‘이산’ ‘동이’ ‘마의’ ‘화정’을 쓴 작가이니 이번 ‘해치’에서도 MBC 사극의 분위기가 풍기는 것이 당연하다.

‘동이’는 숙종이 숙빈 최씨를 만나 연잉군(영조)을 낳게 되는 과정을 그렸고, ‘이산’은 정조가 할아버지인 영조 아래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그렸다. 그 사이에 영조의 청년기가 비었는데 이번 ‘해치’로 퍼즐이 맞춰진 셈이다. 우리 사극 전체를 통틀어 봐도 영조의 젊은 시절을 그린 작품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해치’의 의미가 각별하다.

김이영 작가의 사극은 ‘이산’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그 후로 조금씩 화제성이 떨어져 갔다. 특히 가장 최근작인 ‘화정’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요즘 젊은 세대의 감성엔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김 작가가 방송국을 옮겨 선보인 신작은 어떤 모습일지, 청년 영조는 어떻게 그려질지가 관심사였다.

‘해치’에서 김 작가는 기존 스타일의 틀을 유지한다. ‘이산’에서 도화서, ‘동이’에서 장악원, ‘마의’에서 혜민서를 다뤘던 것처럼 ‘해치’에선 사헌부 감찰을 다루면서 전문 직업을 전면에 내세운다. 하지만 기존 스타일에서 벗어난 점도 있다. 전작들보다 훨씬 어두운 분위기다. ‘이산’에선 왕실 인물 뒤에 언제나 햇살이 비칠 정도로 화면이 화사했다. 반면에 ‘해치’에선 그런 화사한 햇살이 비치지 않고, 작품이 살인 사건의 묘사에서 시작될 정도로 분위기가 무겁다. 악인인 밀풍군이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라는 설정도, 일반적인 사극의 악인이 단지 재물이나 권력을 탐하는 존재로 그려진 것과 다르다.

사극에 장르극을 접목한 것이다. 요즘 젊은 시청자들이 장르극에 심취하면서 지상파 드라마의 스타일이 바뀌고 있다. 사극도 SBS ‘뿌리깊은 나무’가 미스터리 장르극의 형식으로 크게 호평받았다. KBS ‘정도전’은 사극 속에 현재의 정치 대립, 민초의 열망을 심어 성공했다. ‘해치’는 이런 시대변화에 대한 김이영 작가의 응답으로 보인다.

‘해치’에도 ‘정도전’처럼 정치 대립과 민초의 열망이 등장한다. 노론, 소론과 연잉군의 치열한 격돌이 그것이다. 기존 사극에선 노론이 단지 탐욕스러운 기득권 집단으로만 그려졌지만 ‘해치’에서 노론 수장 민진헌은 나름의 신념을 가진 인물이다. 단지 그의 정치이념이 연잉군과 다를 뿐이다. 연잉군이 위기에 처했을 때 백성들이 호패를 쌓아 구명하는 장면은 현대의 촛불집회를 떠올리게 했다.

사헌부를 그리는 방식도 현대적이다. 왕조 시대 사헌부를 마치 오늘날의 검찰처럼 그린 것이다. 왕세제라 해도 범죄 혐의가 있다면 연행해서 조사한다는 설정으로 조선시대와는 맞지 않지만 요즘 감각엔 부합한다. 붕당이 사헌부를 좌지우지하고, 사헌부 관원들이 실세의 눈치를 보는 설정은 최근 검찰에 대한 불신을 그대로 표현했다. 이렇게 기존 MBC 사극의 틀 위에 요즘 스타일을 접목해 시대와 호흡한 결과물이 ‘해치’라고 하겠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