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호림박물관에 전시된 고려시대의 종들을 박물관 관계자들이 살펴보고 있다. 섬세한 세부장식을 통해 정교한 주조기법을 엿볼 수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호림박물관 ‘고려의 디자인, 금속공예 빛·소리·향’展

거울걸이·촛대·거울·향로 등
금속공예 대표작 60여점 전시

표면쪼아낸뒤 銀등 채운‘입사’
화려하고 섬세…귀족적 면모

목탑 연상시킨 금동소탑 눈길
“입사와 타출기술 독보적 경지”

고려청자의 오묘한 비색(翡色)에 홀린 사람들이 유심히 청자를 살펴보며 또 한 번 찬탄을 금치 못하는 것이 청자의 표면에 새겨진 용과 봉황, 모란 등의 정교하고 화려한 상감(象嵌) 문양이다. 그러나 고려청자의 ‘상감’ 기법이 금속공예의 ‘입사’(入絲)기법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입사란 날카로운 정 등으로 금속 표면을 쪼아내고 다른 색상의 금속을 넣는 기술을 말한다. 보통 은실을 꼬아 넣기 때문에 은입사(銀入絲)라고도 불린다.
고려시대 금속공예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전시가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제2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고려의 디자인, 금속공예 빛·소리·향’이란 타이틀로 5월 31일까지 계속될 이 전시에는 고려시대 금속공예를 대표하는 작품 60여 점이 공개된다.

미술사가들은 고려 공예를 조선시대와 비교하면서 화려함이 강조된 귀족적인 면모를 특징으로 꼽는다. 또 삼국시대에 발달하기 시작한 금속공예가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 특유의 귀족문화와 만나 최절정기를 이루고 있다고 평가한다. 유진현 호림박물관 학예연구팀장은 “고려시대 공예품으로 많은 이가 청자와 나전칠기 등을 먼저 꼽지만 조형미와 화려함에서 금속공예 역시 그 못지 않다” 며 “고려라고 하는 사회가 외국과 교류가 빈번해 외래 조형요소를 활발하게 받아들였고, 그 같은 조형 문화가 고려 특유의 귀족문화와 만나 금속공예가 만개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시 작품을 살펴보면 빛과 관련된 것으로 거울걸이와 거울인 동경(銅鏡), 등잔걸이인 광명대(光明臺)와 촛대 등이 있다. 모두 34점이 전시되며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선, 균형 잡힌 비례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거울걸이의 경우 정교한 은입사 문양에 두 개의 사각 틀을 교차해 접고 펼 수 있도록 고안된 조형미가 돋보인다.

소리와 관련된 작품은 모두 21점으로 풍경인 풍탁(風鐸), 종, 요령의 일종인 금강령(金剛鈴), 타악기인 반자(飯子) 등이 있다. 정교한 주조기법에 세부 장식이 섬세하다. 아울러, 실제 목탑을 연상케 하는 금동소탑도 눈길을 끈다. 끝으로 향과 관련된 작품에는 향완(香椀)과 향로(香爐) 등 7점이 전시된다. 향완의 경우 유려한 형태와 화려하고 정교한 입사 문양이 이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이미지 크게보기 고려시대의 철제 은입사 거울걸이와 거울. 12세기에 만들어졌다. 호림박물관 제공

최응천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고려시대 금속공예에 대해 “고려시대는 입사와 타출(打出·금속제품을 두드려 문양이 도드라지게 표현하는 기술로 극도의 인내와 정성을 필요로 한다) 부문에서 중국의 장인들도 따라 하지 못할 정도로 창의적이고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했다”며 “고려청자가 고려시대에 들어와서야 등장하기 시작했다면 고려의 금속공예는 그 뿌리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고려청자의 상감 기법 역시 금속공예로부터 비롯된 공예기법에 빚을 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최 교수는 고려시대의 공예품들이 특히 뛰어난 것은 “대부분 귀족과 상류층을 겨냥해 만들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반면 조선은 서민 백성을 대상으로 한 공예품들이 많이 만들어지는 등 수요 계층부터 달랐다”고 설명했다.

한편 호림박물관은 같은 장소의 제3전시실에서 ‘조선의 디자인, 사각함’ 특별전도 같은 기간 개최, 고려와 조선시대 공예미를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조선시대 목공예품의 아름다움은 조선백자의 절제된 미와도 서로 잘 들어맞는다.

특별한 기교와 장식을 구사하지 않는 것이 조선시대 목공예의 가장 큰 특징이다. 특히 디자인적인 면분할(面分割)은 견실한 구조와 단순한 형태미를 드러내는 데 주요한 조형 요소다. 인공적인 손길이 절제된 나무 재료에서는 어떤 장식보다도 은은한 멋이 드러난다. 모두 40점의 사각함이 전시되고 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