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재판부가 21일 1948년 10월 발생한 ‘여순사건’의 피해 민간인에 대해 71년 만에 재심(再審)재판 개시를 확정했다. 대법관들이 고심하고 검토한 결정으로 본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뚜렷해진 사법부 코드화 경향, 그리고 각계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과거사 재평가’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대법원까지 증거와 법리를 뛰어넘어 그런 시류에 맞장구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대한민국 수립 직후 혼란스럽던 시절의 사건이어서 현재 수사기록도 법원 판결문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하는데, 무슨 근거로 재판을 다시 하겠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힘들다. 사법 역사 규명 차원에서 고증·연구·평가라면 몰라도 유·무죄를 다투는 법률적 심리를 다시 하겠다는 것은 현 상태에서는 무리이다.

여순사건은 정부 수립 직후 군 내부 남로당 세력이 무장봉기를 일으키자 국군이 이를 진압한 사건이다. 당시 반란세력에 점령당한 여수와 순천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사망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민간인 438명이 자의적이고 무리하게 연행돼 살해됐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이번 심리에서 대법관 9명은 1·2심과 마찬가지로 “판결서가 미작성됐거나 없어졌더라도 판결은 성립한 것”이라며 재심 대상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박상옥 대법관 등 5명은 소수의견으로 “재판이 실제 있었는지, 피해자들이 사형판결 집행으로 사망한 것인지 의문”이라거나 “검사나 경찰이 직무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증명할 확정 판결이 없다”며 재심 불가 논거를 밝혔다.

시간이 흘렀더라도 불행했던 사건들에 대해 국가와 사회의 잘못이 있다면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배상이나 보상할 당위가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합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과거를 규명하고 치유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당시 국군도 법원도 제대로 구성되지 않은 혼란한 상황에 불법 조사가 있었는지 정부 공식 기록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형사소송법상 ‘재심 이유(제420조) 7가지’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법리상 합리적인 판단이다.

최근 인천시의회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한 월미도 주민 피해 보상을 69년 만에 조례로 추진하는 일도 있다. 이런 ‘역사의 정치화’도 문제인데, 대법원까지 가세한다면 심각한 갈등과 법치 후퇴를 가져올 개연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