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전 울산시장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은 국가기관의 공식 입장으로 믿기 힘들 만큼 충격적이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 판세를 뒤엎었던 사건의 불기소 자체만으로도 심각한데, ‘무죄 선고가 뻔한 사건’ 등 그 내용은 정치 수사였음을 확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불기소 결정문은 보통 A4 용지 3∼5쪽 분량인데, 이번엔 무려 99쪽에 이른다. 그만큼 신중하게 검토한 결과라는 의미다.

검찰이 지난 15일 무혐의 처분을 하면서 제시한 결정문에는 “경찰이 혐의를 전혀 입증하지 못해 5차례나 보완을 지시했으나 무시했다”면서 “증거가 부족해 무죄 선고가 뻔한 이 사건에 대한 아니면 말고 식의 신중하지 못한 기소 의견 송치”라고 적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김 전 시장의 비서실장 등 측근 2명이 2017년 울산 레미콘 업체의 납품을 도와줬고, 골프 접대를 받았다며 대대적 수사를 거쳐 기소를 요구했다. 그러나 울산 업체 사용은 시 조례에 규정돼 있고, 골프 비용은 비서실장 측이 계산한 카드 명세서도 있다고 한다. 울산시 공무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을 불법 혐의로 수사하고 기소 요구까지 했다는 논리다.

이 정도면 공권력의 탈을 쓴 국기(國紀) 문란 범죄다. 물론 울산경찰청장이었던 황운하 대전경찰청장은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 비협조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면서 특검 수사를 주장했다. 이 주장이 맞다면 검찰이 범죄 행위를 한 셈이다. 당시 황 청장과 여당 후보의 회동, 요란한 수사와 선두를 달리던 김 전 시장의 낙선 등 정황을 종합하면 상식적 판단은 어렵지 않다. 황 청장이 그런 혐의로 고발된 상태인 만큼, 검찰은 신속히 수사해 결과를 국민 앞에 내놔야 하고, 국회는 특검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런 범죄를 흐지부지 넘기면 민주주의는 근간부터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