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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만의 태국총선 D-2

군부집권세력 탁신계 견제 총력
타나톤총재, 탁신 지시받는듯한
조작된 음성파일까지 방송 돼

탁신계, 5번 총선서 1당 싹쓸이
이번 선거도 지지율 선두 달려
파격적 포퓰리즘이 ‘무패’비결

대중, 전국민의료보험등에 갈증
엘리트층,예산낭비 이유 反탁신
反군부,1당 돼도 집권은 힘들듯

2011년 조기 총선 이후 8년 만에 열리는 태국 총선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태국 정치권에서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탁신 친나왓(70) 전 총리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태국을 떠나 13년째 해외 유랑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대중은 탁신에게 강한 향수를 나타내고 있고 엘리트층은 탁신 지우기에 여념이 없다. ABS-CBN은 탁신 전 총리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등 최근 유행하는 아시아계 포퓰리즘의 원조’라 칭하며 “탁신의 정치적 영향력은 쁘라윳 짠오차 현 총리는 물론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보다 크다”고 평가했다. 유권자들의 투표 참가 의사가 97%에 이를 만큼 총선 열기가 뜨거운 태국에서 탁신계 정당의 ‘총선 무패 신화’가 이번에도 재현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백전백승 신화’, 집권 군부는 노골적 견제=21일 방콕포스트 등에 따르면 친정부 성향 매체인 네이션TV는 지난 19일 탁신 전 총리와 젊은이들에게 인기 높은 타나톤 중룽레앙낏 퓨처포워드당 총재가 총선 관련 문제를 논의하는 것처럼 들리는 음성파일을 방송했다. 앵커는 두 사람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배경 실루엣을 통해 두 사람을 나타낸다는 것을 손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타나톤 총재가 탁신의 지시를 받는 인상을 강하게 풍기는 이 음성파일은 태국 네티즌들에 의해 곧 ‘조작’임이 밝혀졌다. 태국 정치전문가들은 이번 조작 방송을 반군부 노선을 강하게 드러낸 타나톤 총재와 퓨처포워드당, 여전히 눈엣가시인 탁신 전 총리는 물론 탁신계 정당으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푸어타이당까지 싸잡아 부정적 이미지를 씌우기 위한 네거티브 전략으로 평가했다.

현재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군부의 탁신 견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쁘라윳 총리를 중심으로 한 군부세력은 2016년 상원의원 250명 전원을 군부가 임명할 수 있도록 선거법을 개정했다. 총리 선출에 필요한 상·하원 750표 중 3분의 1을 선점한 셈이다. 또 비례대표 의석을 150석으로 늘려 거대정당보다 소수정당에 유리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투표율을 낮춰 선거 자체를 무효화하도록 선동하는 행위를 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단속에 나섰다. 모두 탁신계 푸어타이당(PTP)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다.

군부가 푸어타이당을 노골적으로 견제하는 것은 그동안 탁신계 정당이 보여준 저력 때문이다. 당 이름은 타이락타이에서 국민의 힘(PPP), 푸어타이당 등으로 바뀌었지만 탁신계 정당은 2001년 이후 치러진 다섯 차례 총선에서 단 한 번도 원내 1당을 놓치지 않았다.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은 2014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탁신계 정당을 몰아냈을 때뿐이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푸어타이당의 지지율이 계속 선두를 달리고 있다. 3월 초 발표된 방콕대 여론조사 결과 정당별 지지율은 푸어타이당(11.7%), 민주당(10.6%), 군부를 지지하는 팔랑쁘라차랏당(10.2%) 순이었다. 탁신 전 총리가 태국에 없음에도 ‘레드셔츠 시위대’ 같은 지지세력들은 끊임없이 그의 구명을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며 군부 및 친정부 세력과 충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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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간 선거 무패 비결은 파격적 포퓰리즘 정책=탁신계 정당에 대한 지지는 탁신 전 총리 집권 기간 유권자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노동자 계층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2001년 집권 후 경제위기 극복은 물론 그가 추진한 ‘전 국민 30바트 의료보험’ 정책, 최저임금 40% 인상, 농어촌 개발 지원, 농가 부채상환 유예, 마약퇴치 사업 등은 아직도 태국민에게 강한 향수로 남아 있다. 여기에 탁신 전 총리 고향인 치앙마이 등을 중심으로 한 북부·북동부 지역의 강한 지역색이 더해지면서 탁신 진영은 선거만 치르면 원내 제1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김홍구 부산외대 태국어과 교수는 “태국민은 집권 당시 직접 농촌을 찾아 생활하며 농촌 개혁에 나서는 리얼리티 TV쇼에서의 탁신의 이미지가 기억에 남아 있다”며 “부패로 낙마했지만 2014년 부패척결을 앞세워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역시 선거자금 모금 축소 발표 의혹, 명품시계 스캔들 등으로 탁신 정권 못지않게 훼손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산층 이상 엘리트계층은 세 부담을 가중시키고 국가 예산을 마구잡이로 낭비한 탁신 정권을 포퓰리즘으로 몰아 배격하고 있다. 탁신 전 총리 집권 시기인 2005년 당시 태국의 국가 재정적자는 9년 만의 최악인 72억 달러에 달했다. 그 여파로 국방예산이 삭감되면서 결국 군부 쿠데타로 이어졌다. 2011년 집권한 여동생 잉락 친나왓 전 총리도 당시 쌀 수매제를 통해 5조 원가량의 막대한 재정적자를 발생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를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엘리트층, 중산층 입장에서 탁신 전 총리는 권력을 위해 국가를 부도 직전까지 몰고 간 포퓰리즘 정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또다시 탁신계 총리 등장할까=탁신계의 영향력이 여전하지만 전문가들은 푸어타이당이 하원에서 전체 500석 중 375석 이상을 석권해 총리를 배출할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김 교수는 “이번에도 1당은 푸어타이당이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며 “다만 총리 배출은 현재 구도상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은홍 성공회대 정치학과 교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선거가 치러지는 만큼 탁신계가 정권을 되찾아 올지 의문”이라며 “그러나 하원 다수당을 차지하는 만큼 국정에서의 영향력은 클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의 변수로 거론되는 것은 총리를 최종 인준하는 와치랄롱꼰 국왕의 의중이다. 특히 평소 와치랄롱꼰 국왕과 가까운 사이였던 우본랏 라차깐야 공주가 친탁신계 군소정당 타이락사차트당에서 총리 후보로 선출됐다 무산된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이병도 한국외대 태국어과 교수는 “단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국왕과 전혀 상의 없이 출마가 이뤄지진 않았을 것”이라며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과 달리 와치랄롱꼰 국왕이 군부보다 탁신계에 우호적이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