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가동후 2년간 63차례나 지진… 사실상 예고된 ‘人災’

이미지 크게보기 20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한지질학회 주최,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 주관으로 열린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에 관한 정부조사단 연구결과 발표’ 회견장에서 포항지진시민연대 회원들이 정부 배상을 요구하는 펼침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 ‘지열발전소 촉발’ 결론 파장

지하4㎞ 깊이 뚫은 시추관에
물 주입때 압력이 단층 자극

이미 수십회 진동 있었지만
“안전 고려없이 무리한 운영”

2017년 11월 15일 경북 포항에서 일어난 규모 5.4 지진이 당시 인근에 건설 중이던 지열발전 시설의 영향을 받았다는 조사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지열발전을 위해 뚫은 공간으로 물이 들어가며 지진 발생에 영향을 줬다는 게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결국 포항지진도 ‘인재(人災)’였던 것이다.

20일 대한지질학회가 주관한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 분석 연구’ 조사단은 포항시 흥해읍 남송리 일대에서 추진 중이었던 국내 최초 ‘㎿급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을 위한 지열발전소 건설이 포항지진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이미지 크게보기

지열발전은 지하 4㎞ 이상 깊이로 구멍 2개를 뚫어 한쪽에 물을 주입해 뜨거운 지열로 데우고, 이때 발생하는 수증기를 다른 쪽 구멍으로 빼내 발전기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드는 원리다. 지진 직후 지질학계 일부에서는 진앙(震央)이 지열발전소와 인접했다는 걸 원인으로 꼽으며 “지하로 주입한 물이 지진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번 조사단의 결과로 이 같은 주장이 사실로 입증된 것이다. 조사단은 지열발전을 위한 고압의 물이 미세한 지진을 일으켰고, 자극을 받은 포항지역의 단층이 한계에 이르러 포항지진이 촉발됐다고 결론을 내렸다.

문화일보가 단독입수한 포항지열발전소의 산업통상자원부 보고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지열발전소가 시험 가동 이후 땅속에 물을 주입하면 직후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전소가 2016년 12월 15일부터 22일까지 3681t 상당의 물을 주입한 뒤 다음 날인 23일 포항 북구에선 규모 2.2의 지진이 관측됐다. 사흘 후인 26일 작업을 재개해 28일까지 226t의 물을 다시 주입하자 29일 규모 2.3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후 발전소 운영업체인 넥스지오는 4개월 가까이 물 주입을 중단했다. 물 주입은 2017년 3월 16일부터 재개돼 4월 14일까지 2831t가량의 물이 주입되자, 다음 날인 15일 다시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했다. 특히 이날 지진은 발전소에서 서쪽으로 1.5㎞ 떨어진 곳이었다. 이후에도 물 주입이 계속(2017년 8월 7~14일 1756t·2017년 8월 30일~9월 18일 2334t)되면서 진동이 감지됐고, 결국 9월 18일 이후에는 주입 작업을 멈췄지만 23일에도 진동이 발생했다. 이런 식으로 약 2년간 63차례나 땅이 흔들렸다.

지열발전으로 인한 지진 발생은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스위스 바젤에서는 2006년 12월 지열발전소가 시추를 시작한 지 불과 엿새 만에 이 지역에서 규모 3.4의 지진이 발생해 상당한 피해가 났다. 지열발전소 운영은 즉각 중단됐지만, 그 후에도 규모 3이 넘는 지진이 3차례나 잇따랐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지열발전에 의한 규모 5.0이 넘는 지진이 발생한 전례가 없어 포항지진 당시에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지열발전 원인론을 두고 의견이 갈렸다.

이날 발표에 따라 정부가 시험 사업이었지만 지역 주민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였던 만큼 지열발전소 운영에 더욱 엄밀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조사연구 결과로 인해 민간 컨소시엄에 경험이 없는 중국계 회사가 참여해 시추와 물 주입을 담당해 지진에 대한 위험성을 키웠다는 지역 주민들의 주장에도 힘이 실리게 됐다. 정부가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사업을 추진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박정민·이해완 기자 bohe0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