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강원 동해의 북평 5일장에서 뜯어온 봄나물로 좌판을 펼친 할머니. 북평 5일장은 노점을 포함한 점포 숫자만 800개가 넘는 큰 시장이다.

상큼한 봄기운 물씬 ‘시골장터 5選’

머잖아 봄의 한가운데다. 봄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상큼한 ‘봄의 맛’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쌉싸래하고 여린 봄나물이 그렇고, 봄 바다에서 잡아 올리는 생선들이 그렇다. 떠들썩한 분위기와 함께 이런 ‘봄의 산물(産物)’이 그득 모이는 곳이 바로 시골 5일장이다. 장날 촌로들이 좌판에 펼친 냉이와 쑥, 두릅, 참취에서는 봄기운이 물씬 느껴진다. 딱히 살 것이 없더라도 따스한 봄볕 쏟아지는 장터를 기웃거려 보면 그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은 봄기운으로 가득 충전된다.

지리산에서 나는 약초 한가득

# 약초와 산나물, 어물전까지…전남 구례 5일장

전남 구례는 대표적인 봄 여행지. 해마다 노란 산수유의 개화로 남도 땅에 비로소 봄이 당도했음을 알리는 곳이다. 구례는 지리산 자락 아래에 자리 잡고 있어 산에서 나는 갖가지 약재와 산나물로 유명하다. 구례 5일장은 3, 8일에 열린다. 5일장이 열리는 구례읍 봉동리의 장터는 한식 장옥이 깔끔하다. 낡은 옛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투박한 사투리가 오가고 풍성한 덤을 얹어 주는 시장 분위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장터에서는 약재의 은은한 내음과 풋풋한 산나물의 향기가 먼저 마중 나온다. 구례 5일장은 예부터 지리산 깊은 골에서 나는 약재들이 한데 모였다. 쌉쌀한 당귀와 더덕, 물오른 칡과 생지황 등 약초가 좌판에 한가득이다. 여기에 봄이면 고사리, 쑥, 냉이 등 산나물이 함께 곁들여진다. 좌판을 펴고 앉은 할머니들은 갓 캐온 나물을 손질하느라 손이 바쁘다. 어물전도 제법 규모가 크다. 민어, 낙지, 굴비, 홍어 등 남도에서 나는 해산물들이 총집결했다. 구례 5일장의 역사는 줄잡아 200여 년이 넘는다. 조선 시대에는 구례에서 하동포구로 이어지는 섬진강 물길을 따라 타지의 상인들도 여기 구례 5일장까지 와서 물건을 거래했다고 전한다.

고로쇠 물·토종 흑돼지 ‘명물’

# 지리산이 내놓는 것들…남원 인월장

전북 남원의 인월 5일장은 3, 8일 인월면 버스터미널 인근에서 열린다. 본래 닷새마다 열리는 5일장이었다가 10년 전쯤 아케이드를 짓고 상설시장으로 개편됐지만, 지금도 장날이면 시장 일대의 도로마다 좌판이 좍 깔린다. 장이 열리는 남원시 인월면은 경남 함양읍과 경계를 맞대고 있어 상인 절반은 전라도 남원 사람이고, 절반은 경상도 함양 사람이다. 이들이 쏟아내는 전라도와 경상도 사투리로 장은 늘 시끌벅적하다.

인월장에는 봄이면 지리산에서 자란 산나물과 비닐하우스에서 길러낸 녹색 채소들이 풍성하다. 녹두, 기장, 서리태 등의 곡식과 메주, 묵나물, 장아찌 같은 밑반찬 거리, 지난가을 수확해 말린 더덕, 곶감, 대추부터 새봄에 파종할 씨앗도 있다. 여기다 농번기가 시작되면 바빠질 호미며 낫 같은 농기구들도 시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인월장의 명물이라면 이른 봄에 지리산에서 채취한 고로쇠 물과 남원의 토종 흑돼지. 장날에는 좌판에 앉아 팥죽이며 보리밥도 맛볼 수 있다.

갓 잡아 올린 해산물 풍성

# 나물부터 해산물까지…강원 원주 5일장

강원 원주는 교통의 요지 중의 요지. 영동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 중앙선 기차, 강원도와 충청도, 경기도를 가로세로로 잇는 5번 국도, 19번 국도, 42번 국도가 원주를 지난다. 예부터 원주 5일장이 발달한 것도 이런 편리한 교통 때문이었다. 원주의 5일장은 2, 7일에 평원동 일대의 원주천변 민속풍물시장에서 열린다. 쌍다리라 불리는 원주교에서 봉평교까지 이어지는 민속풍물시장에는 봄이면 달래, 냉이, 씀바귀, 돌나물 등의 나물부터 쪽파와 양파, 겨울 동안 저장해 둔 생강, 풋콩까지 나온다. 원주의 5일장에는 내륙의 다른 장터와 달리 동해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이 많다는 게 특징이다. 내륙의 한가운데 장터지만 바닷가 마을의 장터에서나 볼 수 있는 도치, 열기 등도 나온다. 원주 5일장에는 40여 년째 직접 빚는 아주머니 손만두가 있고, 대를 이어 족발을 삶는다는 삼형제의 족발이 있으며, 철판에서 부쳐 내는 정선 할머니의 메밀부침이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 5일장 좌판에 나온 싱싱한 푸성귀들.

새벽부터 문 열고 전통 물씬

# 진짜 시골 5일장…충북 영동 임산장

충북 영동의 임산장은 때 묻지 않은 재래식 시골 5일장이다. 5일장의 전통이 아직 살아 있어 새벽에 장사를 시작해서 점심시간이 지나면 하나둘씩 좌판을 접는다. 장이 일찍 끝나니 장터의 활기를 제대로 느끼겠다면 되도록 일찍 서둘러야 한다. 임산장은 주민들의 물물교환 장소에 가깝다. 장이 서면 갖가지 산나물과 직접 만든 두부를 바구니에 담아 이고 온 촌로들이 길가에 자리를 잡고 죽 늘어선다. 촌로들의 나물 바구니에는 영동군을 둘러싸고 있는 민주지산이며, 비봉산, 천태산 등 깊은 산에서 캐낸 고사리, 두릅, 참나물, 취나물 등이 가득하다.

임산장은 느릿느릿 달리는 시골버스를 타고 가는 게 제격. 황간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임산행 시내버스를 타고 15㎞쯤 가면 임산장이 열리는 상촌면 소재지다. 임산 5일장은 1, 6일. 날짜가 맞지 않는다면 인근 지역으로 가면 된다. 황간은 2, 7일에, 심천·학산·추풍령은 3, 8일에 각각 장이 열린다. 또 4, 9일에는 영동지역에서 가장 큰 장인 영동장이, 5, 10일에는 매곡과 용산에서 장이 열린다.

점포수 800개…공작새도 팔아

# 공작새까지 판다…동해 북평 5일장

3, 8일에 서는 강원 동해의 북평 5일장은 ‘전통시장의 간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평 5일장은 장날이면 노점을 포함한 점포 수가 800개가 넘어 난전이 차도까지 주르륵 밀려 내려올 정도로 거대하다. 점포가 많은 만큼 위세도 당당하고 손님 또한 많다. 북평 5일장에는 없는 게 없다. 언젠가는 공작새를 가지고 나와 파는 상인을 보았을 정도다.

시장에는 몇 줌의 곡식, 꾸러미로 담아온 달걀 따위를 좌판에 펼쳐놓은 노인이 유독 많다. 모두 제집에서 기르고 거둔 것들이다. 내다 팔기 위한 대단위 농업이 아니라, 제 먹을 것을 거두려는 자급자족의 농업으로 길러낸 것이란 얘기다. 가지런한 크기로 포장된 도시의 대형마트 물건처럼 깔끔하지는 않아도 믿고 손이 가는 건 그래서다. 꼭 살 물건이 없어도 장날에만 문을 여는 간이식당에서 차게 말아낸 잔치국수를 후루룩 맛보는 것도 좋고, 나무로 깎은 송아지 코뚜레나 강아지와 토종닭, 흑염소에다 심지어 공작새까지 늘어놓고 파는 노점을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박경일 기자 par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