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개최
현대차·대한항공 주총 논의
연금 관치주의 부작용 우려

국민연금의 기업 경영에 대한 간섭이 본격화되면서 연금 관치주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기업의 주주총회를 앞두고 이전과 달리 의결권 행사 방향을 사전에 공개하면서 큰손의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으로 인해 의결권 행사 방향을 사전에 공개했다지만,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일상화해 차후 특정 기업 공격 시 명분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상장사들 역시 사전 공개한 국민연금의 반대 의견을 놓고 뚜렷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게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쏟아지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14일 제5차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서울 모처에서 비공개로 열고 전문 판단이 필요한 주총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논의했다. 현대자동차와 대한항공 등에 대한 주주권 행사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앞서 기금운용본부는 기금위 홈페이지에 14일부터 20일까지 주주총회를 여는 기업 중 23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의결권 행사 방향을 미리 공시했다. 이 중 LG하우시스, 한미약품, 현대건설, 현대글로비스 등 11개 기업에는 1개 이상 반대 안건을 던지기로 했다.

이처럼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방향을 사전에 대거 공개한 것을 놓고 비판의 시각이 적지 않다. 연금전문가인 김용하 순천향대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한진칼의 경우 사회적 논란과 이목이 집중돼 정부가 애초 의도한 대로 적극적으로 경영 간섭을 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이 때문에 평상시에 주총에서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여줘 나중에 특정 기업을 공격할 때 명분을 확보하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한진칼의 경우 경영실적이 나쁘지도 않은데 특정 이사나 대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갈아치우려고 한다면, 어떤 기업이 기업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며 “부작용이 상당히 클 것 같아 우려된다”고 밝혔다.

또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워낙 큰손이다 보니, 다른 투자기관의 행동을 유도하게 되는 쏠림 현상도 우려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사전 공시는 대한항공·한진칼처럼 경영권 향방을 가르는 기업에는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는 “국민연금이 미리 찬성 또는 반대 의견을 밝히면 다른 기관투자자들은 눈치 보고 따라가기 마련이라 쏠림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