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박주희(앞줄 왼쪽 첫 번째) 춘천중 교장이 새 출발을 하는 졸업생들을 축하해 주기 위해 고운 한복을 정성껏 차려입고 함께 자리했다. 박 교장은 행복한 학교, 용기를 얻을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했고 정년을 앞둔 지금도 변함없는 목표라고 말했다. 박주희 교장 제공

박주희 춘천중학교 교장

틈만나면 교정·급식소 찾아
“어려운점 없나”“ASK 하라”
학생 만나 고민 듣고 도움 줘

가출학생 체벌보다 따뜻한 관심
타인에 대한 배려·존중 늘 강조
나눔 캠페인·물품기증 등 활발
‘가족에 감사문자’캠페인 계획

강사초빙 교사 역량강화 교육도

“학생이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늘 ‘주변, 타인, 사회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할 수 있는 일과 행동을 하는 게 가장 가치 있는 삶이다’라고 강조해 왔어요.” 박주희(여·61) 춘천중 교장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처음엔 인터뷰를 정중하게 고사했다. 자신을 추천해 준 이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돌이켜보니 교육 인생이 그리 모범적이지 않았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1980년 처음 교단에 선 후 39년째 교육자로 활동하면서 교내외에 ‘작은 울림’을 준 궤적을 좇아 보니 겸양(謙讓)이었다. 그래서 후배 교사, 학생, 교육계에 빛과 거울, ‘창’(窓)으로서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어렵게 설득했다.

강원 영월 태생인 박 교장은 오는 8월이면 정년을 맞아 평생 정든 교단을 떠난다. 그만큼 애정이 깊을 수밖에 없다. 교육자 생활을 천천히 되돌아보며 정리도 하고 있는데, 지금도 틈만 나면 쉬는 시간, 점심 시간을 이용해 교정, 급식소를 찾아 학생들을 만난다. 그리곤 정겹게 “어려운 점은 없어요?” “필요한 건 뭐예요?” “언제든지 ASK! 해요”라며 학생들이 속앓이만 하고 있을지 모를 고민을 챙긴다. 관리자인 교감, 교장이 된 후 보다 여유가 생겨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주위에서는 귀띔했다. 늘 학생들에게 관심을 두고 살피며 어려운 점이 무엇일지 파악하기 위해 먼저 조용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고 한다.

“저는 매사에 항상 긴장하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이 있을지를 먼저 떠올립니다. 소외된 학생들을 발견할 수 있는 따뜻한 관심, 세심한 눈길은 그래야 가능하다고 다짐했죠. 교사는 가정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랑의 전달자’가 돼야겠다고 결심하기도 했었고요.”

평교사 때부터 다양한 교육 방법을 도입한 배경이다. 동료들과 함께 학습하고 학생들에게 적용하며 혁신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슬럼 지역 학교에서 근무했던 게 가장 큰 계기가 됐다. 불우한 가정환경 때문에 사랑을 받아본 적도, 주는 방법도 모른 채 가출, 자해하거나 집단행동을 하는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깊이 고민했다. 내린 결론은 체벌이나 엄격한 가르침이 아니라, 가정의 공백을 학교가 조금이라도 채워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생을 이해해주고 기다려주고 품어주는 교육 방법인 ‘심성수련 프로그램’도 이런 숙고 끝에 선보였다. 1년 동안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직접 만든 자료로 동료 교사와 함께 길을 찾았다. 강원도 교육정책의 일환인 ‘회복적 생활교육, 관계 중심 생활교육’도 같은 맥락에서 지속해온 사례 중 하나다.

지난해 춘천중에 부임한 후에는 교사 연수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강사를 초빙해 교직원을 대상으로 역량 강화 교육을 한다. 학생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교사들의 의견 역시 더없이 소중하다는 판단에서 교직원들과도 자주 소통하며 생각을 나눈다. 관리자가 된 후에는 학생, 교사, 부모, 가족 간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교육이 이뤄져야 효과 역시 배가될 수 있다고 판단해 늘 관계 형성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카리스마가 있는 관리자가 아닌 친절하고 인간적인 관리자가 되고 싶다고 말해 왔어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를 드러내기보다는 타인의 뒤에서 그를 빛내주기 위한 역할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모두를 밀어주는 관리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뒤에서 보이지 않게 최대의 역량을 발휘하게끔 위로, 격려하고 응원해 주는 역할이죠.”

교내에 학생과 교사가 조용히 상담할 공간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건의를 듣자마자 유휴공간을 활용해 ‘나눔터’라는 상담 공간을 만든 것이나, 앞으로 교내에 벤치를 추가할 구상도 이의 연장 선상에서 기획하고 있다. 학생들이 더 편하고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더 확충할 계획이다.

주위에 대한 배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소신은 기부에서도 조용히 빛을 발하고 있다. 교단에 서는 동안 학생들과 가치관에 관한 대화를 많이 나누고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삶, 감사하는 삶의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유도해 왔는데 말에 그친 게 아니라 먼저 솔선했다. 개인적으로 후원하는 것은 물론, 친한 지인들에게 기부하도록 권유한다.

“주위의 많은 선생님이 해왔고 대단한 일도 아닌데 부끄럽네요. 예전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이 한 반에 한두 명은 꼭 있었죠. 국가적인 지원도 부족했던 시절이라 수학여행을 못 가거나 졸업 앨범을 구매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남몰래 도와주기도 했었죠. 한번은 서울로 취업해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지낼 곳이 없어 난감해하더라고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친척 집에 잠시 머물며 원활히 자리를 잡게 도움을 주기도 했었죠.”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나눔 캠페인과 후원 물품 기증을 하는 춘천중의 활동에 대해 많은 관심을 쏟는 것은 그에게 당연한 일이다. 지난해에는 학생들이 감사의 소중함을 익히도록 어버이날을 맞아 전교생을 대상으로 부모님께 감사 편지 쓰기 행사를 했다. 또 휴대전화로 가족에게 감사 문자 보내기도 했는데 반응이 좋아 캠페인 형식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박 교장에게 앞으로 남은 5개월은 더 소중하고 금쪽같은 시간일 터. 그는 “학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이 행복하게 다닐 수 있는 학교, 용기를 얻을 수 있는 학교로 만들어가도록 미력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며 모처럼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

이민종 기자 horiz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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