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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운 논설위원

문 정부 경제도 외교도 불안
동남아 순방 메시지 불분명
앙코르와트 방문 놓고도 뒷말

외교 우선순위부터 확실히 해야
동맹·북핵에 더 집중력 보이고
中·日·러·EU 협력도 강화 필요

문재인 정부의 외교 정책이 불안해 보인다. 너무 친북(親北)적인 것뿐만이 아니다. 외교의 경중(輕重)을 파악하지 못하고, 완급(緩急)도 조절하지 못하고 있다. 문 정부의 경제 정책이 문제라는 불만이 많지만, 사실은 외교가 더 심각한지도 모른다. 현재 진행 중인 동남아 3국 순방에 문 정부 외교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상외교는 그 자체로 중요한 메시지다. 대통령의 올해 첫 해외 출장이라면 분명한 목적과 그를 뒷받침하는 일정이 있어야 한다. 미국·중국·일본 또는 북한보다 신(新)남방 정책이 우선순위라면, 그런 비전을 밝히는 연설이라도 방문국 어디에선가 해야 한다. 그런 정도의 메시지는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는 3개국 정상을 만나 2차 미·북 회담 결과를 공유하겠다고 순방 직전 브리핑을 했는데, 그즈음에 미국이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불가를 밝힌 것을 보면 한·미 간에 충분한 협의가 이뤄졌는지도 의문이다.

브루나이. 인구 43만의 소국(小國). 지난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방문했던 나라를 문 대통령이 6년 만에 또 갔다. 전임 대통령 방문국은 피하는 것이 관례다. 문 대통령은 하사날 볼키아 국왕과의 회담에서 “평화·번영을 위한 지혜를 빌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작은 나라에서도, 왕국에서도 배울 게 있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번영의 지혜가 브루나이에서 나올까. 정상회담 말고는 한국 기업이 참여한 건설 현장과 왕실 박물관 방문 정도가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한류 문화와 할랄 시장 진출, 캄보디아에서는 농업 인프라와 산업·금융 분야 협력이 주요 일정이다. 모든 나라가, 모든 정상외교가 중요하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이런 정도 일정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무총리, 외교장관이 소화해도 충분하다.

물론, 세 나라 순방 일정은 오래전에 잡혔을 것이다. 그 당시엔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북한 핵 문제가 꼬이고 한·미, 한·일 관계가 갈등에 빠질 것을 적어도 문 정부는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갑자기 한반도 주변 정세가 숨 가쁘게 돌아간다고 해서 약속한 순방 일정을 취소하거나 조정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순방 과정에서 불거져 나오는 이런저런 일들은 계속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말레이시아는 문 대통령 방문을 하루 앞둔 11일 김정남 살해에 가담했던 인도네시아 국적 시티 아이샤에 대한 살인혐의 기소를 취소하고 석방했다. 매우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결정이다. 문 대통령과 우리 정부를 무시하는 것인가, 아니면 선물이라도 준 것인가. 북한의 사주로 화학무기를 이용한 반인륜적 테러에 가담한 범인을 풀어준 말레이시아 정부의 의도가 궁금하고, 이에 대해 문 정부가 어떤 입장을 전달했는지 알고 싶다.

문 대통령은 오는 16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거쳐 귀국한다고 한다. 세계적 유적이자 관광지인 만큼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청와대는 브루나이에 체류 중인 11일에야 캄보디아 정부 요청에 따라 뒤늦게 앙코르와트 방문이 결정됐다고 발표했다. 사실일까. 관광 다니냐는 비판이 두려워 이미 결정된 사안을 늦춰서 발표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정숙 여사가 출국 전 순방 3국 유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캄보디아에서 온 학생이 “앙코르와트를 꼭 가셨으면 한다”고 발언한 것을 청와대가 소개하기도 했다.

우리 외교 목표는 분명하다. 첫째, 한·미 동맹 강화. 둘째, 북한 핵 폐기. 셋째, 중국·일본·러시아 등 동북아 주변국들과의 협력 유지. 넷째,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 리더들과의 연대 확산. 그다음쯤이 동남아·중동·남미·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경제협력 등 관계 구축일 것이다. 지금 문 정부는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목표가 다 흔들리고 있다. 미국에서는 주한미군 철수 얘기가 나오고, 중국과는 사드 갈등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송금·비자발급 정지까지 검토하고 있고, 유럽 일부 국가들과는 지난해 문 대통령의 대북 제재 완화 요청 때문에 관계가 껄끄러워졌다.

이런 실정이기 때문에 이번 동남아 순방이 임기 초가 아니라 말에나 있을 만한 한가한 외유(外游)라는 말도 나온다. 문 대통령 부부가 지난해 11월 체코를 방문했을 때 ‘프라하의 연인’ 논란이 있었다. 앙코르와트에서는 그런 모습을 연출하지 말길 바란다. 한 번은 웃을 수 있지만, 두 번은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