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희망·현실 인지부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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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워싱턴 특파원

1954년 미국 스탠퍼드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레온 페스팅거는 한 소동에 주목한다. 당시 도로시 마틴은 그해 12월 21일 대홍수로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구도자들(the Seekers)’이라는 신흥종교를 이끌고 있었다. 지구 멸망으로 지목된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마틴과 신도들은 자신들의 믿음 덕분에 지구가 구원받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종교 집단에 잠입해 이를 관찰했던 페스팅거 교수는 3년 후 ‘예언이 실패했을 때’라는 책을 통해 ‘인지부조화 이론’을 발표한다. 인지부조화 이론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지구가 종말한다)과 현실(종말이 오지 않았다) 사이에 부조화가 발생하면 자기합리화(우리의 믿음 덕에 종말이 오지 않았다)로 해결하려 한다는 이론이다.

요즘 한국 정부를 바라보는 미국 정치권의 시선에서 한국이 인지부조화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담긴 것을 느낄 수 있다. 코리 가드너(공화·콜로라도)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태 소위원장은 지난 7일 2차 미·북 정상회담 관련 토론회에서 한국의 대북 제재 동참을 강조하면서 “평양에 뚜렷한 행동 변화가 없음에도 남북 협력 증진의 명분을 열심히 추구하려 하는 우리의 친구 한국”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생각(북한은 비핵화 의지가 있다)과 2차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현실(북한은 비핵화가 아닌 제재 해제를 원한다) 사이에 부조화가 발생하자 자기합리화(제재를 해제해주면 북한은 비핵화를 할 것이다)에 빠진 한국 정부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미 국무부 관계자가 남북 경협 제재 면제 검토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니다(No)’라고 말한 것도 한국 정부 움직임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다.

미국 정부는 북한 핵 폐기라는 비핵화 정의에도 동의하지 않는 북한을 보며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의구심을 표시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차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완전한 비핵화 대 경제적 보상’이라는 빅딜 카드를 던진 것은 비핵화 의지를 보이라는 일종의 시험이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영변 일부 핵 시설 폐기 대 사실상 대북 제재 전면 완화’라는 오답을 내놓았다.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면서 제재 해제를 얻어내 핵과 경제 두 가지를 모두 가지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이에 미국 정부와 의회는 북한에 핵과 경제 중 하나만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며 대북 제재 강도를 높이고 있다. 북한이 2차 정상회담에서 대북 제재 전면 완화를 요구한 것이 제재 효과의 방증이라고 보고 비핵화를 견인하기 위해 제재 수위를 한층 높이고 나선 것이다. 이런 미국 정치권의 눈에 한국 정부의 움직임은 인지부조화를 벗어나려 자기합리화에 애쓰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비핵화에 따른 혜택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북한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효과를 이미 알고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북한이 핵 개발에 매진할 때 핵과 경제 두 가지 모두를 가질 수 있게 해준 존재였다. 비핵화 조치 없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비핵화를 견인하는 동인이 아니라 북한에 다시 핵과 경제를 안겨줘 비핵화를 좌초시키는 암초에 불과하다.

suk@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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