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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역(橫逆). ‘세종 시대의 무장’ 이징옥의 최후를 읽으면서 떠오른 낱말이다. 횡역이란 “원수진 사람과 용모가 비슷하거나 혹은 원수를 진 일로 참소하는 말에 끼어들어, 관계가 없는데도 갑자기 앙갚음을 당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이 정의를 내린 혜강 최한기에 따르면 횡역은 대체로 실마리를 따라 나온다. 남의 오이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매거나 자두나무 아래에서 갓을 바로잡는 행동은 그 자체로는 잘못이 아니지만, 과수원 주인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실마리다.

따라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은 작은 오해라도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언행을 삼가야 한다는 게 최한기의 조언이다. 이 조언에 비춰 볼 때 이징옥의 최후 대응은 어떠했나? 우선 그는 결정적인 시기, 즉 그가 “휘하 장수를 시켜 변방의 무기를 서울로 옮겼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1453년 5월 15일부터 “이징옥이 안평대군을 도와 불궤(不軌·반역)를 꾀하고 있다”고 지목받기까지 5개월 동안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

실록에 기록된 것처럼, 만약 “임금(단종)이 어려서 나라 상황이 장차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했으면, 그래서 안평대군의 집권을 허여(許與)했다면 그는 좀 더 적극적으로 외부 지원(外援)을 했어야 했다. 자기 밑의 함길도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수양대군을 사전에 제압했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애초에 휘하 장수의 무기 반출을 처벌하고 ‘김종서 패거리’라는 오해를 불식시켰어야 했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심지어 수양대군에 의해 ‘안평대군 사람’으로 낙인 찍히고 유배 조치를 당할 때까지도(10월 13일) 그는 잠잠히 있었다. 그러다가 후임자에게 군 지휘권을 인계하고 떠나는 길에 갑자기 되돌아와 후임자를 죽이고 거병했다(10월 25일). 유배 통보를 들은 지 12일, 역모 연루 소문이 퍼진 지 5개월이 지난 뒤였다. 한마디로 그는 정치에 무지한 군인이었다.

이미지 크게보기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전쟁 승리 후 장군들은 둘 중 하나를 취하지 않으면 죽임을 당한다. 고대 로마의 역사를 연구한 끝에 마키아벨리가 내린 결론이다(‘로마사론’ 30장). 그 하나는 승리를 거두자마자 곧바로 궁궐로 가야 한다. 교만한 태도나 공명심에 사로잡힌 언동을 일절 삼가서 권력자의 ‘의심 섞인 두려움’을 원천적으로 예방해야 한다(최윤덕의 길). 다른 하나는 전쟁 수행 과정에서 획득한 일체, 즉 군대와 백성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길이다. 이웃 나라와의 관계도 새롭게 정립해 여차하면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하되, 심복들을 궁중에 심고 중간 지휘관들을 매수해야 한다(이성계의 길). 그래서 권력자로 하여금 그를 두려워해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특정 정치 세력에 정적으로 낙인 찍히지 않는 것이다. 불행히도 이징옥이 선택한 것은 최윤덕의 길도, 이성계의 길도 아니었다. 그저 미온적 자세로 사태를 관망하다가 ‘계유정난’으로 기선을 장악한 수양대군에게 궁지에 몰린 뒤에야 거병했다. 그는 민심 장악에도 실패했다. 스스로를 대금황제(大金皇帝)라 칭하고 천도(遷都)를 선언하면서도 정작 백성의 마음을 얻는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위엄 세우기와 은혜 베풀기가 함께 이뤄져야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다는 세종의 조언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그는 휘하의 군 장교에게 피살당한 것에서 보듯이 휘하 장수에게조차 신뢰를 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징옥을 ‘반역자’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세종이라는 정치 울타리가 무너진 가운데 벌어진 호랑이와 이리 싸움의 희생 제물이기 때문이다. 인재들이 끊임없이 정치적 계산을 해야만 하는 조직,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군인들이 법정에 서야 하는 나라는 미개하다. 그 미개함으로부터 인재를 보호하지 않으면 나랏일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