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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경 전국부 차장

동남아시아 지역 차량호출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그랩은 현재 미국 우버, 중국 디디추싱(滴滴出行)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차량호출회사 세 곳 중 한 곳으로 손꼽힌다. 사업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의 현대·기아차, 일본 토요타(豊田)자동차, 중국 디디추싱 등으로부터 거액의 투자금을 이미 유치했고 지난 6일 일본 소프트뱅크비전펀드(SVF)로부터 14억6000만 달러(약 1조6483억 원) 신규 투자를 받았다. 우버와 디디추싱이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자 동시에 창업이 가장 왕성하게 이뤄지는 미국과 중국을 배경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그랩의 아이디어와 사업 수완은 더욱 도드라진다. 그랩의 성공 요인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창업자들이 해외 창업 동향에 정통했다. 2012년 6월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에 재학 중이던 말레이시아 출신 앤서니 탄과 탄 후이 링은 우버 성공에 고무돼 고국에서 그랩을 설립하고 서비스를 시작했다.

둘째, 스케일업(아이디어를 상품·사업으로 구현시키는 과정)에 능했다. 앤서니 탄 등은 2012년 말레이시아에서 사업을 시작한 뒤 이른 시일 안에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사업 체계를 구축했다. 차량호출뿐 아니라 오토바이, 3륜 자동차(툭툭), 음식 배달, 모바일 결제 등 각국 실정에 맞게 서비스 범위를 순식간에 넓혔다.

셋째, 동남아 지역 국가의 규제 정도가 덜한 점도 그랩의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다. 그랩은 택시회사들과의 충돌을 우려해 택시호출 서비스(그랩택시)로 시작했다. 하지만 수요가 워낙 많아지자 자연스럽게 개인차량(그랩카)을 서비스에 추가함으로써 개인차량을 고집한 나머지 해외 진출 각국에서 택시업계와 충돌을 일으킨 우버 사례를 비교적 유유히 비켜 갈 수 있었다. 동남아 각국에서 사업 모델을 확장하는데 ‘심각한’ 규제 장벽은 없었다. 오히려 ‘대중교통 지옥’이라는 평가를 받는 샌프란시스코 교통 환경이 우버를 낳았듯이 동남아 택시에 대한 가득한 불만이 그랩 성공을 견인했다.

그랩이 세계적인 스타트업으로 급부상하는 데 말레이시아 정부는 무슨 역할을 했을까. 앞에서 열거한 세 가지 성공 요인에서 굳이 찾는다면 세 번째일 것이다. 외국물 먹은 똑똑하고 부유한 젊은이들이 해외 성공 사례를 들고 와 뚝딱뚝딱 회사를 만들고 이를 성장시키는 과정을 그냥 지켜본 것이 결과적으로 그랩 성공에 도움을 준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6일 △12조 원 규모의 스케일업 전용펀드 조성 △벤처기업 차등의결권 도입 검토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제2 벤처 붐 확산전략’을 발표했다. 스케일업이라는 용어가 들어간 것으로 봐서는 이 개념을 퍼트린 이정동 대통령경제과학특별보좌관이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스케일업은 돈을 더 지원한다고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일종의 산업 문화 혹은 비즈니스 관행이라고 할 때 벤처 붐 조성을 위해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스케일업이 가능한 비즈니스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이재웅 다음 창업자가 정부 발표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규제개혁에 집중해 달라. 그러면 제2의 벤처 붐은 만들지 않아도 온다”고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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