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달 18일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우치사이와이초 일본국립사회보장 인구문제연구소에서 한·일 인구문제 전문가들이 양국의 출산율 자료를 비교하며 저출산 해법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석재은 교수, 스즈키 도루 박사, 국중호 교수, 김용하 교수.

- 한·일 전문가에게 듣는 저출산 해법

“韓, 전통적 규범·의식 여전
자녀들 독립도 日보다 늦어

여성 노동력은 증가하지만
일·가정양립 빨리 개선안돼
女 출산율 급등하기 어려워

여성들 결혼기피 큰 이유는
시댁에 의무봉사 거부감 탓
혼수비용도 너무 많이 들어
결국 결혼포기‘N포’세대로”

[좌담 참석자]

김용하 전 보건사회연구원장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스즈키 도루인구문제硏 박사
국중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

이미지 크게보기

합계출산율 0.98. 사실상 세계에서 유일한 ‘출산율 1명대 미만’ 국가다. 남자와 여자 각 1명 총 2명이 채 1명도 낳지 않는다는 ‘마이너스 인구국가’로 최악의 상황에 달했다는 의미다. 인구유지에 필요한 합계출산율이 2.1명인 점을 고려하면, 출산율 0명대의 국가에 진입한 한국이 머지않은 미래에 국가의 존립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겪은 일본조차도 2005년 1.26명으로 바닥을 찍고 점차 올라 2017년에는 1.44명까지 오른 상황이다. 일본은 1.44명까지 끌어올린 뒤에도 여전히 저출산 대책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저출산 대책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출산율 반등 실패는 물론 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무엇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저출산을 어느 정도 극복해가고 있는 일본의 대책을 살펴보기 위해 한국의 저출산 고령화 문제 전문가 김용하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순천향대 IT금융경제학과 교수),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함께 지난달 18일 도쿄(東京)에 위치한 일본국립사회보장 인구문제연구소를 찾았다. 이곳에서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인구문제 전문가 스즈키 도루(鈴木透) 박사와 일본 경제 전문가 국중호 요코하마(橫濱)시립대 교수를 만나 한국의 저출산 원인과 대책에 대해 토론을 나눴다.



△스즈키 도루 박사 =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한국의 0.98명처럼 심각한 건 아니지만, 드라마틱하게 개선되고 있지도 않다. 1.4명 정도다. 일본의 출산율이 한국보다 높은 것은 문화적 요인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가족에 대한 입장을 보면 일본이나 유럽 국가와 달리 한국과 대만, 중국은 유교의 후손이라는 차이가 있다. 미국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가족 밖의 학교나 직장의 성평등이 개선되면 가족 안의 평등이 개선되는데, 그 가족과 가족 외 성평등의 차이가 저출산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한국은 가족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 규범이나 의식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예를 들어 아주 최근에 들어서야 남아선호사상이 개선됐다. 전통적인 의식을 개선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가족에 대한 의식이나 성평등 차이가 일본보다 한국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는 젠더 관계에 한정되는 게 아니라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캥거루족’이라는 신조어가 있듯이 부모들이 자녀에 대해 더 보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결국 자녀의 경제적인 독립도 일본보다 늦지 않은가 생각된다. 이렇게 가족에 대한 의식이 아주 완만하게 변할 수밖에 없고, 결국 가족 안과 가족 밖의 차이는 큰데 그것이 저출산의 주된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석재은 교수 = 가족과 가족 밖의 이퀄리티 차이가 저출산을 낳는다는 가설이 매우 흥미롭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의 맥락을 생각해볼 때는 잘 맞는 가설인가 잘 모르겠다.

△스즈키 박사 = 근거 중에 하나는 한국의 남아선호사상이 일본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가족에 대한 전통적인 태도인데, 일본이 가장 자유롭고 한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은 여성의 일보다는 남편의 일을 더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은 그렇지 않다.

△국중호 교수 = 한국은 결혼하면 맞벌이든 외벌이든 돈을 같이 모아서 쓰는데, 일본은 따로 하는 경우가 많다. 프라이버시를 매우 중요시한다. 한국은 결혼하면 이불을 같이 쓰지만, 일본의 부부는 서로 다른 이불을 사용한다. 그만큼 자기만의 영역이 있다.

△석 교수 = 한국 여성이 결혼을 기피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결혼하면서 시댁이라는 새로운 집단을 위해 의무봉사하는 데 대한 거부감이 크기 때문이다. 결혼하면서 다른 사람의 통제권에 들어간다는 것을 타협할 수 없어 한다. 한국에서는 아직 개인주의가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에 결혼 자체에 대해서도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스즈키 박사의 말씀처럼 아동에 대한 부양이 강하고, 늦게까지 부양하는 등 한국사회에서 결혼에 대한 깊이(부담)가 큰 것 같다. 중요한 포인트다.

△김용하 교수 = 최근 한국에선 혼외출산에 대한 정책 지원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프랑스의 경우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은데, 한국은 남녀가 결혼하고 살아야 하는 문화적 이유 때문에 출산율에 차이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 관습은 한 번에 바꾸기 어려운데, 실제로 일본 같은 경우는 어떤가.

△스즈키 박사 = 당연히 속도위반이 있다. 다만 혼외출산은 전체의 2% 정도로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 대만도 4% 정도다. 동북아 국가에서 혼외출산이 높지 않은 건 인구증가론 측면에서 수수께끼이긴 하다. 일본도 1990년대 혼외출산이 증가한 적이 있었지만, 그것이 전체 출산율의 회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단지 혼내출산이 혼외출산으로 바뀐 것으로 출산율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김 교수 = 한국 같은 경우, 결혼 비용이 많이 든다. 양육비용 전에 이미 결혼비용 자체가 많이 드는데 일본은 어떠한가?

△스즈키 박사 = 아마도 어느 정도의 수입이나 자금이 없으면 결혼을 결심할 수 없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것보다는 장래에 대한 확실성과 불확실성이 출산율에 주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석 교수 = 현재 한국에는 ‘N포세대’라는 말이 있다. 모든 걸 포기해야 하는 세대라는 의미다.

△스즈키 박사 = 일본은 종신 고용체제이기 때문에 한국보다 확실성이 높지 않은가 싶다. 특히 한국에선 자영업자가 너무 많다. 그건 정년까지 회사에서 일할 수 없고 ‘사오정’ 등 퇴직에 대한 압력이 높다는 말이다. 이는 대체로 최근까지도 대만이 한국보다 출산율이 낮았던 이유와 같다.

△김 교수 = 한국은 합계출산율이 1.2명까지 떨어진 뒤 다시 반등하다가 2017년부터 다시 떨어지기 시작하고 있다. 한국 학자들도 왜 올라가다가 다시 내려갔느냐에 대해 해석을 못 하고 있다. 다시 꺾인 사실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스즈키 박사 = 어느 정도 출산율이 회복되는 움직임은 대개 저출산을 경험하는 국가에서 볼 수 있는 변화다. 대만의 경우에는 호랑이 해의 영향이 컸다. 한국의 경우에는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지 않은가 싶다. 제가 한국어 회화를 배우는 한국학자들의 경우 모두 문재인 대통령 탓이라고 이야기한다.(웃음)

△국 교수 = 한국과 일본을 보면 대통령과 총리대신이 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 한국은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하다. 일본에선 어떤 문제에 대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탓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김 교수 = 일본은 아베노믹스 등으로 일본경제가 침체상태에서 벗어나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물론 정부의 탓만은 아니지만 경제성장률과 함께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대통령 탓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출산율을 높이기 어려우니 이민을 받아들이자는 말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일본도 이민정책을 완화해야 한다는 소리가 있던데.

△스즈키 박사 = 아시다시피 일본은 외국인 노동자 수용에 대해 아주 신중하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외국인 고용이 없고, 대신 실습생제도를 유지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보다도 지난해 외국 워킹 비자가 적다. 외국인 수용에 대해 일본이 한국보다 더 앞섰다고 보기 힘들다. 외국인 문제는 너무 민감한 정책이라 정치적으로 지지를 받기 어렵다.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외국인 허가제가 필요했지만, 일본은 무역의존도가 그렇게 높지 않아 신중할 수 있다. (화제를 바꿔) 모든 선진국이 2.0명 이하의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 선진국의 생활양식이라는 게 인구를 유지할 수 없는 구조다. 선진국은 고도성장을 경험해 낮은 성장률 상황을 겪고 있고 이로 인해 노동시장이 악화하고 장래에 대한 걱정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에 대응하기 가장 쉬운 건 교육투자인데, 그 때문에 아이의 교육비는 높아진다. 그리고 여성의 노동력 참여가 증가하게 되지만, 일·가정 양립성 개선은 노동 참가율처럼 빨리 개선될 수 없기 때문에 출산율 저하를 가져온다.

△김 교수 = 한국 저출산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한국이 0.98명 상태로 떨어져 있는데 이 상태가 계속 높아지지 않고 유지될 것 같은 불안감이 있다. 이렇게 됐을 때 국가정책적으로 해야 할 게 있을까.

△스즈키 박사 = 이 수준으로 가면 일본은 물론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최종적으로 멸종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몇천 년 걸릴 거다. 그전까지는 해결된다고 믿고 노력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인구학자가 이런 말도 했다. 지금 출산율의 세계적인 패턴은 50년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부터 50년 후 역시 상상할 수 없다는 말이다. 출산율 회복을 위한 시나리오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써야 하지 않을까.

△김 교수 = 한국은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있다. 일각에선 남북통일이 인구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도 보고, 또 다른 일각에선 통일된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인구는 한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스즈키 박사 = 한국정부는 대만정부와 비교하면 저출산 대책에 아주 필사적이다. 대만정부는 필사적이지 않다. 대륙의 노동력과 자본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륙의 자본이나 노동력을 도입하면 저출산이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에 북한은 부담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정부는 필사적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도쿄 = 정리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