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바둑 국가대표들과 코치가 한국기원에서 바둑 AI에 관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정상 9단, 신진서 9단, 신민준 9단. 한국기원 제공

■ 인공지능 최전선(AI Frontier) - ② 프로기사 3人이 말하는 ‘새 바둑 지형도’

- 박정상
“새 포석 많아져 초반단계 발전
간단한 수 놓치는 버그는 여전”

- 신진서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시스템
다양한 패턴 대비할 때 도움”

- 신민준
“굳이 亞 유학 올 필요성 없어져
아프리카서도 고수탄생 가능”

프로 바둑계에서 인공지능(AI)과 함께 열심히 공부하는 3명의 프로기사를 만났다. 국제대회에 나갈 바둑 국가대표를 양성하는 코치 박정상 9단과 국내 랭킹 5위권의 두 강자 신진서 9단, 신민준 9단이다. 이들은 바둑 AI와 경쟁하거나 공동 연구한 본인의 방법과 느낌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AI의 장단점, 어떻게 해야 최고의 성과를 내는지도 털어놓았다.

사회(이하 사) = “좀 있으면 알파고 쇼크 3주년이다. 바둑 AI에 놀랐다가 이제 현실로 받아들이고 이를 응용해 더 높은 기력을 연마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현장에서 누구보다 이런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세 분의 경험을 듣고 싶다.”

박정상(이하 박)=“이세돌과 알파고 대국 때 TV 해설을 맡았다. 이 9단이 두 번 연속 패하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지금 바둑 국가대표를 지도하는데 가장 큰 변화는 AI의 수(手)와 기보를 연구한다는 점이다. 바둑 AI가 생겼다고 전통적인 복기가 무의미하진 않다. AI에 너무 의존하지 않도록 일부러 공동 연구를 한다. 집단 정답과 근사치인지 비교한다. 수법 면에서는 바둑을 시작할 때, 즉 빈 바둑판에 처음 두는 초반 단계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새 포석이 많아진 것이다. 물론 인간에게 간단한 수도 놓치는 등 아직 버그는 있다. AI 끼리 다른 판단도 내놓는다. 그래도 국가대표팀에 좋은 컴퓨터 하드웨어를 제공하려고 애썼다. 추천 수와 승률 계산에 걸리는 시간이 짧아지니까. 대표 선수들은 한돌, 바둑이, 돌바람 등 다양한 국산 바둑 AI를 사용한다.”

사 = “두 기사분의 경험을 들려달라. 언제부터, 어떻게 바둑 AI를 쓰고 있나.”

신진서 9단(이하 신진) = “바둑 AI는 2017년부터 쓰고 있다. 초창기에는 푹 빠졌는데 여러 수를 봐서 그런지 예전만큼 자주 하진 않는다. 그래도 아직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집 컴퓨터, 노트북, 스마트폰을 연결해 언제 어디서나 바둑 AI와 공부한다. 미니고, 릴라제로, 엘프고를 모두 쓴다. 3개의 바둑 AI 실력은 비슷하지만 스타일이 전부 다르다. 릴라제로는 중국 줴이(絶藝)처럼 두터움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엘프고는 후반으로 갈수록 특이하다. 내가 둔 시합이나 연습대국의 복기에 우선적으로 사용한다. 내 생각이 들어가 있어 AI 생각과 비교하기 좋다. AI의 추천 정수(正手)를 보고, 그 외의 자리도 검토해본다. 바둑 한판을 완벽하게 연구하는 것이다. 초반 포석에서 상대 수를 예측하는 공부에도 쓴다. 마지막으로 다른 기사들의 기보를 찍어보면서 내 생각과 비교해본다. AI마다 패턴이 있다. 새 포석은 외워둔다. 어떤 모양이 나오면 그 승률을 외우는 게 지금 공부 방법이다. 하지만 아예 모르는 상대 수 진행이 나올 때에 대비한 연구도 한다. 너무 AI에 의지하다 보면 생각 없이 복기할 때도 가끔 있다. 그래서 요즘은 개인 공부 시간을 늘리고 있다. 본인의 생각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신민준 9단(이하 신민) = “작년 5월부터 AI와 공부하기 시작했다. 궁금한 수를 전부 물어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선배님에게 물어봐도 의문이 남을 때가 있는데 확실하게 수치로 알려주니까 배울 점이 많다. AI의 기풍은 중앙의 두터움을 정확하게 계산하다 보니 실리를 상대에 먼저 내어줘도 크게 의식하지 않고 둔다는 느낌이다. 사람처럼 불안해하지 않고 미지수의 두터움을 선호한다. 중국은 우리나라 바둑 AI보다 더 강한 줴이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 기사들이 이걸로 훈련하니까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정부가 더 관심을 갖고 지원했으면 좋겠다. 기원에서 전에는 훈련을 공동 연구 위주로 했는데, 요즘은 개별 연구 비중이 커졌다. 한·중·일·대만 등 동북아 4개국의 인기 스포츠에서 10년 후에는 세계 바둑 민주화로 중동이나 아프리카 같은 오지에서 고수가 나올 가능성이 많아졌다. 강자하고 붙어야 실력이 느는데, 굳이 아시아로 바둑 유학을 오지 않아도 이제 아무 데서나 AI 사범을 모시고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진 = “이른 시기에 AI와 공부하는 게 좋으냐, 나쁘냐 논란이 있다. AI를 이기는 게 목표라면 처음 시작할 때부터 같이 하는 게 맞다. 인간 기력이 더 성장할지 모르니까. 어릴 때부터 한다고 독창성이 없어진다고 보지 않는다. 나도 지금보다 더 성장할 수 있다. 힘들겠지만 노력하면 알파고제로까진 아니더라도 릴라제로, 엘프고는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가능은 없다.”

사 = “대단한 기백이다. 정진해서 이세돌 복수전을 해주었으면 좋겠다.(웃음) 코치님, 마지막 한 말씀 부탁드린다.”

박 = “AI는 강하다. 하지만 같은 바둑이다. 오히려 인간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딥마인드가 기보를 공개한 후 AI 바둑은 이제 인간에게 스며들었다. 최근 프로 기사 사이에 AI의 대표 수법인 3선(線)의 어깨 짚음이 유행한다. 반면, 소목 날일 자 굳힘의 수천 년 포석은 사라져 간다. 협업을 통해 더 깊은 바둑의 우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물론 아직 버그가 있다. 완벽하진 않다. 축이나 수읽기를 실수한다. 흉내바둑 같은 변칙이나 평소와 다른 비정상적 흐름에는 굉장히 약하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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