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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균 前 외교부 차관보 前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한반도 운명의 날이 밝았다.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과를 앞두고 온갖 시나리오가 난무한다. 미국에 대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위협만 제거하는 ‘스몰딜’에서부터 ‘영변 핵시설+α’, 그것도 넘어서는 ‘빅딜’까지 다양하다. 그런가 하면 북한이 비핵화 결단을 내렸는지 아직 불투명하며, 이번에 비핵화 개념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려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대한 미국의 상응 조치로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개설,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재개에 대한 제재 면제, 부분적 제재 완화 등 다양한 조합이 점쳐진다.

이렇듯 넘쳐나는 도로 표지판에 정신을 뺏기다 보면 자칫 우리의 행선지가 어디였는지, 왜 이 길로 들어섰는지 잊기 쉽다. 하노이 회담의 결과를 앞두고 우리가 지켜야 할 기본 입장을 되돌아보자.

첫째, 미·북 간의 어떠한 합의가 도출되더라도 그 중심은 반드시 북한 비핵화가 돼야 한다. 당초 북한과의 협상은 북한의 핵 및 운반 수단 능력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게 제거한다는 CVID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 목표가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한반도 비핵화(FFVD)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북한의 핵 위협 감소”로 축소됐다. 이것은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이 주장하는 ‘핵군축’에 가깝다. 비핵화 목표가 희미해져 가는 자리에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금강산·개성공단 등이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은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와 연결돼야 의미가 있는 것이며, 비핵화를 대체할 수 없다.

둘째, 진정한 북한 비핵화를 달성하려면 목표가 분명한 비핵화 로드맵이 합의돼야 한다. 즉, CVID를 최종 목표로 한 로드맵을 갖고 이에 근거하여 비핵화 조치를 이행해 나가야 하며, 그렇지 않고 북한이 정해주는 대로 한 시설에서 다른 시설로 옮겨다니는 식(site by site)이 돼선 북한의 핵 능력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길이 없고, 결국 비핵화는 이룰 수 없다. 로드맵에는 시한(時限)이 반드시 명시돼야 한다. “서두를 것 없다”는 자세로 북한과 기약 없는 협상을 하며 세월을 보내는 것은 결국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만들어줄 뿐이다. 하노이 합의에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시험장 사찰, 나아가 영변 핵시설 관련 조치가 담길 수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포함한 전체 비핵화 로드맵 협상을 위한 명료한 임무와 시한을 부여받은 후속 협의체가 합의될지 여부에 있다.

셋째, 북한 비핵화에 우리가 조력자·촉진자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당사자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비핵화는 미·북만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는 북한의 핵 위협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가장 중요하고, 직접적인 당사자다. 지금처럼 북핵 문제는 미국이 풀어 달라고 맡겨 놓고, 우리는 남북관계만 책임지고 진전시켜 나가겠다는 자세로 과연 한반도의 주인으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돌아볼 일이다. 미·북 간 협상으로 비핵화의 물꼬가 트였다 하더라도, 앞으로의 협상은 우리가 참여하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6자가 참여하는 협상으로 전개되는 것이 필요하다.

1차 싱가포르 회담은 걱정스러우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지켜봤다. 2차 하노이 회담은 그런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크다. ‘잘못된 합의를 하느니 합의를 않는 편이 낫다’는 외교 격언도 있다. 실질적인 북한 비핵화 진전 없이 겉만 번지르르한 합의가 나와선 안 된다. 이 모든 것이 기우(杞憂)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