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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경제학 바른사회 공동대표

탄력근로제는 성수기·비수기가 뚜렷한 업종에서 근로의 유연성을 제고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탄력근로 단위기간 중 일이 많은 주(週)의 노동시간을 늘리는 대신 다른 주의 노동시간을 줄여 평균치를 법정 한도 내로 맞추는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2주 이내 또는 3개월 이내로 제한하고 있어 그동안 개선이 요구돼 왔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주 52시간제 보완 수단으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행 최장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데 지난 19일 합의했다. 노사가 난제를 대화로 풀었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하지만 근로시간 변경 등 ‘근로조건 변화를 이해 당사자에게 맡기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합의안은 노(勞)에 유리하게 돼 있다. 우선, 탄력근로 단위기간이 노측의 선호를 반영해 6개월로 정해졌다. 다수 선진국이 택하고 있는 1년에 비해선 미흡하다. 신제품 출시 경쟁을 해야 하는 IT업계나 공기를 맞춰야 하는 건설, 정비와 운전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화학 업종에 6개월은 충분치 못한 시간이다. 노측은 단위기간을 6개월로 늘리는 대신 ‘탄력근로의 도입 요건, 건강권 보호, 임금보전’ 등 주요 쟁점에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했다. 노동계는 11시간 연속 휴식권을 명문화했고, 탄력근로제 시행에 따른 잠재적 급여 삭감을 방지하기 위해 임금보전을 위한 각종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합의안대로 탄력근로를 시행하려면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가 필요하다. 여기서 근로자 대표는 과반수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를 가리킨다. 대규모 강성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선 그나마 탄력근로제 도입이 어려울 수 있다. 탄력근로의 안전장치가 갖춰졌다면 노조 단위가 아니라 ‘개별 근로자와 회사’ 간 계약만으로 제도를 시행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합의에선 수용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경노사위에 불참한 민노총은 합의안을 강력하게 부정하고 있다. ‘정부·경총·한국노총이 야합한 것’이란다. 민노총은 항의와 분노를 담아 전국 확대회의를 열고 3월 6일 예정한 총파업을 강력하게 조직해 탄력근로제 야합을 산산이 분쇄하겠다고 한다. ‘자신이 빠지면 야합’이라는 논리는 참으로 군색하다.

세계 최고의 강성 노조가 득세하는 현실에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안을 사회적 대화로 풀어보겠다고 한 것 자체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경사노위는 대통령 자문기구일 뿐 의결기구가 아니다. 자문기구의 한 구성원에 지나지 않는 민노총이 의제를 쥐락펴락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이끈 하르츠 개혁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하르츠위원회는 이해 당사자를 위원회에서 완전히 배제했다.

탄력근로제는 경직된 노동시장을 해빙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정보통신기술(ICT)의 급속한 발전은 근로 장소와 시간의 개념을 크게 변화시켰다. 이는 탄력근로제 또는 유연근로제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급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탄력근로제는 입법 사항이다. 민노총이 탄력근로제 합의에 걸림돌이 된다면 이해 당사자 배제 원칙을 세우고 이해 중립적인 전문가 중심으로 논의를 새로 시작할 필요가 있다. 탄력근로 확대는 처음부터 경사노위로 떠넘길 게 아니라 정부·국회가 결단했어야 할 사안이다. 이해 당사자가 비토 그룹이 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근로자와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법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