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갑질119’에 사연 봇물

상사의 괴롭힘 시달렸지만
입증 힘들어 경찰에 고소못해
증거없으니 법적구제도 안돼

“가해자가 폭행 인정한 내용
녹취한뒤 고용부에 신고해야”

직장에서 폭언이나 폭행을 당하고도 신고를 못 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청년들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단순 폭언·폭행은 고소나 구제 절차를 밟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A(23) 씨는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대학-강소기업 연계형 청년일자리사업을 통해 지난해 12월 한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전공을 살려 취업을 했다는 기쁨도 잠시, A 씨는 직장 상사의 상습적 폭언과 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한 달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A 씨의 직장 상사는 수시로 A 씨의 뺨을 ‘딱밤’으로 때렸고 정강이를 툭툭 걷어찼다. A 씨는 21일 “퇴사 다음 날 경찰에 직장 상사를 고소하려 했지만, 단순 괴롭힘이라 진단서를 발급받을 수 없어 법적 조치를 하기 어렵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 8조에 따라 직장 내 폭행 가해자는 5년 이하의 징역형에 해당하는데 A 씨처럼 단순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갑질을 겪는 직장인들을 돕는 단체인 직장갑질 119의 오진호 총괄스태프는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해도 증거자료가 없으면 적극적으로 처리해 주지 않는다”며 “직장 내 단순 괴롭힘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직장갑질 119가 운영하는 익명 채팅방에는 비슷한 사연들이 줄을 잇는다. 성희롱 등 폭언과 욕설에 시달렸다는 10년 차 여성 직장인 B 씨는 “본사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직장 상사에 의해 해고 당했다”고 호소했다. B 씨는 “이미 회사를 나와서 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받을 수 없었다”며 “경찰에 고소장은 제출했으나 증거가 없어 수사가 어렵다는 말도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체육 전공자인 C(22) 씨는 회사 선배가 “왜 나를 우습게 보냐, 요즘 나대고 까분다” 등 폭언을 일삼았고, 아무도 없을 때 주먹으로 때리려 했다고 호소했다. C 씨는 “수사기관에 신고하려면 증거 수집이 제일 중요한데, 증거를 수집할 수 없어 경찰 신고를 포기했다”고 밝혔다.

이에 신고 문턱을 낮추고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용부가 청년노동민원센터를 설치해 단순 폭언·폭행문제 피해자들이 상담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사영 노무사는 “가해자가 자신의 입으로 괴롭혔다고 한 내용을 녹취해서 고용부에 신고해야 한다”며 “가해자가 폭행 사실을 은연중에 이야기하도록 유도하는 게 현실적인 대처법”이라고 조언했다.

전세원 기자 jsw@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