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19일 전화 통화는 시의적절하긴 했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상당한 우려를 낳게 한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27∼28일 열릴 미·북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정상의 직접 조율은 당연히 필요하다. 두 정상이 35분 동안 어떤 대화를 했는지 모두 공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청와대 서면 브리핑 내용을 보면, 대한민국 안보를 위해 최우선 순위에 있어야 할 북한의 핵 리스트 신고·검증과 로드맵, 비핵화 협상과 한·미 동맹의 분리 원칙 등에 대한 입장 교환은 없었던 것 같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하기 위한 상응 조치로서 한국의 역할을 활용해 달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다면 그 역할을 떠맡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 경협사업도 거론했다. 외양으론 한·미 역할 분담을 통한 공조를 다지는 것 같지만, 본질을 들여다보면 북핵 폐기에 앞서 한국의 대북 지원과 남북 경협을 실시하고, 이를 위해 대북 제재에 대한 예외 조치를 미국에 요청하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유엔 제재 결의와 의회의 반대 입법 등으로 현 상태에서는 대북 지원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한국에 대한 예외 허용 방식으로 대북 지원을 우회하는 식으로 제재완화를 자청(自請)한 셈이다.

이런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 비핵화 견인이라는 명분으로 대북 지원을 시작한다면, 힘겹게 유지되는 대북 제재의 둑이 무너진다. 그 뒤 중국과 러시아가 어떻게 나올지 불 보듯 뻔하다. 북한은 경제 지원을 받으면서, 핵 개발을 계속할 수 있게 된다. 그나마 트럼프 대통령이나 미국 행정부가 실질적 비핵화 때까지 대북 제재를 유지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행이다. 북핵 협상이 지지부진할수록 제재는 강화돼야 한다. 북한이 계속 핵 역량을 강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핵실험이 없는 한 서두를 것이 없다”고 밝혀 협상결과를 예단하긴 어렵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이 앞장서서 제재 완화를 외치는 것은 5200만 국민을 핵 볼모로 내놓겠다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해법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