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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열 경제산업부 부장

소프트웨어(SW) 의무교육 1년이 지났다. 중학생은 졸업 전에 ‘정보’ 과목을 반드시 듣도록 지난해 의무화했다. 올해는 모든 초등학교로 SW 교육이 확대된다. 미래를 뒤바꿀 인공지능(AI) 기술의 기초소양을 초·중학 시절부터 길러주자는 의도로 교육과정을 개정한 결과다. 어린 학생들은 컴퓨터 구조부터 로봇 작동용 SW 프로그램 짜기(코딩)까지, 한국의 스티브 잡스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성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대구 매천중은 Code.org 같은 온라인 교육 플랫폼으로 68시간 동안 SW를 충실히 가르쳐 우수 선도학교로 뽑혔다. 전국에 이런 학교가 1641개, 학생 동아리도 1891개나 생겼다. 교사도 SW 역량을 키우려고 시범수업 및 발표로 구성된 에듀톤 대회를 열며 달라진 시대에 적응하려 애썼다. 조사를 해보니 학생과 학부모의 95%가 “SW 교육이 논리적·창의적 사고에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양과 질, 속도다. SW 의무교육은 통틀어 초등학교 17시간, 중학교 34시간에 불과하다. AI의 설계자, SW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대덕·대구·광주 마이스터고 3곳의 연간 졸업생 수도 220명밖에 되지 않는다. 초·중·고로 올라가면서 점차 높은 단계의 교육을 받는 체계적 시스템이 필요한데 지금은 학교마다 중구난방이다. 수업 내용 역시 최신 흐름에 뒤처져 있다. C, Java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 배우기 수준에 멈춘 교육과정도 손봐야 한다. 교사 역량을 더 높이고 현장 전문가로부터 실전훈련도 받아야 한다. 무섭게 달리는 AI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아야 한다. 한국은 이세돌 9단이 딥마인드 AI에 패배한 2016년 알파고 쇼크를 기억하지만, 미국 등 AI 선진국은 1997년 체스 세계 챔피언이 IBM 슈퍼컴퓨터 딥블루에 진 사건을 충격적으로 떠올린다. 비극의 영웅 가리 카스파로프 체스 그랜드 마스터는 2년 전 펴낸 회고록 ‘딥 씽킹(Deep Thinking)’에서 당시를 돌아보며 “AI 전문가들은 나를 항복시키고 다음 목표로 바둑을 잡았다. 20년이면 따라잡을 것으로 봤다”고 회상했다. 정확하게 19년 후 바둑도 AI에 정복당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ICT 규제 샌드박스 1호를 발표했다. 실망스러웠다. 혁신성장 규제 완화의 첫 사례가 교통범칙금 등 공공기관 우편 고지서를 문자로 받는 것이라니. 은행, 백화점 같은 민간기업은 진작 해오던 일이다. 의료규제 완화도 손발이 묶인 미완성품이다.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달면 의사가 멀리서 심장 상태를 점검, 이상 시 병원으로 오라고 즉시 연락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식약처에서 의료기기 허가를 받은 뒤 사업을 개시하라는 혹이 달렸다. 게다가 장관은 원격의료가 아니라고 펄쩍 뛰었다. 대면 진료·치료만 고집하는 의사들 눈치를 본 것이다. 그사이 다른 나라 병원은 저소득층과 섬 등 오지 주민을 대상으로 값싸고 편리한 원격의료 서비스를 앞다퉈 도입 중이다. 소아당뇨 아들에게 원격치료기를 달아주려다 의료기기법 위반으로 고발당한 어머니에게 대통령이 “깊은 반성”을 말한 게 엊그제다. SW 영재를 키우면 뭐하나, 한국에서 사업하려면 기득권 집단의 저항에 막혀 출발도 하기 전에 질식할 텐데. 원래 샌드박스는 어린이가 어른 간섭 없이 맘껏 뛰노는 모래 놀이터에서 나온 말이다.

nos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