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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신애의 ‘세상은 요지경’

용한 분을 찾아가면 과거부터 묻는다. “어릴 때 집 근처에 감나무가 있었나?” “아닌데요.” “거봐. 그랬으면 여기 성한 몸으로 못 왔지.” 자리 깔고 앉으려면 통찰력보다 순발력이 우선이다. 만약 동네 어귀에 진짜로 감나무 비슷한 게 있었다면? 희미하나마 그랬던 것 같다고 기억을 푸는 순간부턴 지갑 열 준비를 해야 한다. 도인이 꿰뚫어보는 불길한 미래를 막을 수만 있다면 부적 하나쯤 속옷에 붙이는 불편함이야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대중예술가는 마당보다 마음속에 감(感)나무를 키워야 사는 직업이다. 변화를 감지하고 시대의 요구를 예측하는 자라야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 “요즘 감이 많이 떨어지신 것 같네요.” 그 말을 무시하고 무작정 전진한다면 시행착오가 아니라 시대착오를 범하게 된다. 히트메이커들이 종적을 감추는 게 이 무렵부터다.

미래 예측은 힘들어도 결과 분석엔 선수들이 즐비하다. 닭을 잡을 것인가 범인을 잡을 것인가. 영화 ‘극한직업’은 닭도 잡고, 범인도 잡고, 관객도 잡았다. 불과 22일 만에 13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을 거라 미리 감 잡은 사람이 솔직히 많진 않았을 거다. 개인적으론 3층 아줌마의 등장이 신선했다. 이분이 누구신가. 1993년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래로 TV를 뒤흔들던 신신애(사진)다. 따라 할 수 없는 자유로운 막춤과 천연덕스러운 무공해 표정으로 시청자를 무장해제 했다. 예능PD들에겐 시청률 보증수표로 불렸던 바로 그분께서 2019년 요상한 치킨집에 씩씩하게 나타났으니 반갑지 아니한가.

이뿐 아니다. tvN ‘놀라운 토요일’(1월 26일 방송)에선 ‘세상은 요지경’ 가사가 퀴즈 문제로 출제됐다. MC 신동엽은 “비교하자면 당시엔 이효리의 ‘텐 미닛’급이었다”고 소개했다. ‘세상은 요지경/요지경 속이다/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 우선 요지경의 뜻을 살펴보자. ‘확대경 속의 그림을 돌리면서 구경하는 장치나 장난감’ ‘알쏭달쏭하고 묘한 세상사’. 사람에 따라선 ‘세상이 요런 지경까지 이르다니’로 들릴 수 있겠다. 노래는 세상을 비수처럼 겨눈다. 잘난 사람의 ‘최고’를 보며 박수를 치던 그 사람과 잘난 사람의 ‘최후’를 보며 혀를 차던 그 사람은 동일인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여기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못난 사람이다. 문제는 못난 사람이 아니라 못된 사람이다. ‘너 자신을 알라’고 수천 년 전부터 요구받았지만 그게 도통 어렵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모르더라도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진 말자. 자신을 모르면 못난 사람에 머물 뿐이지만 자신밖에 모르게 되면 못된 사람으로 분류된다.

“난 평판에 신경 안 써.” 그래도 사람에 대한 평가는 감나무 가지처럼 줄기차다. 각자의 안경을 쓰고 인물을 보기 때문이다. 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이 사람에겐 나쁜 사람인 경우가 흔하다. 헤아려보면 좋은 사람의 반대말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싫은 사람이다. 싫은 이유는? 취향의 차이거나 경쟁 관계이거나 나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니 수양하려면 마음속 감나무를 정성껏 가꿔야 한다. 스스로 정의라고 이름 붙였는데 누군가 그것을 불의라고 할 땐 둘러보거나 돌아봐야 한다. 정의와 정의감을 구별하지 않으면 세상이 요지경이 된다.

‘인생 살면 칠팔십/화살같이 속히 간다/정신을 차려라/요지경에 빠진다’. 씹을수록 해학적이면서 동시에 철학적이다. ‘여기도 짜가/저기도 짜가/짜가가 판친다’. 가짜는 많지만 공짜는 없다. 이럴 땐 혼탁한 세상보다 유구한 세월을 바라보는 게 현명하다.

세상은 요지경이지만 세월은 망원경에 가깝다. 현미경, 내시경으로 어디까지 볼 수 있을까.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세 치 혀를 놀리다가 패가망신한 자가 좀 많은가. ‘왜 잡으려고 하니/왜 가지려고 하니/자꾸 그럴수록 외로워져/혼자 살아가야 하니까’(김수철 ‘정신 차려’ 중).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