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청·장년(靑長年)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김현철 경제보좌관을 하루 만에 사실상 경질한 것은 국민 분노가 그만큼 컸다는 반증이다. ‘일자리 정부’를 자임하면서 재난 수준의 고용 상황을 만들어 놓고는, 그 고통의 최전선에 선 2030세대의 ‘헬조선’ 절규를 힐난했다. 5060세대엔 “SNS에 험한 댓글만 달지 말고 아세안으로 가라”고 했다. 경제난에 신음하는 민심을 이렇게 모를 수 있는가. 문 대통령은 “신남방정책을 강조하다 나온 말”이라며 실언 취급하지만 그렇게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다. 김 전 보좌관을 포함한 문 대통령 경제 참모들의 왜곡된 현실(現實)인식과 철학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 전 보좌관은 지난해 11월 경제위기론 지적에 대해 “기승전 기업 기 살리기를 요구하는데 개탄스럽다. 개혁의 싹을 잘라내려 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장하성 전 정책실장은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 폭등을 부른 시점에서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이유가 없다”는 말로 국민의 복장을 뒤집어놓았다. 소득주도 성장의 설계자라는 홍장표 전 경제수석비서관은 문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경제 통계만 제시, “소득주도 성장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이 나오게 한 장본인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뜬금없는 발언 역시 청와대 참모의 보고가 작용했을 것이다. 선의를 가진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건 착각이고, 고용 부진·분배 악화·투자 위축은 인식 오류의 뼈아픈 결과다. 최저임금을 억지로 올리면 일부 근로자 소득은 오르지만, 자영업자·중소기업은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는 것이 시장원리다. 이날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선 정책 핵심 관계자들의 자성 목소리도 나왔다. 정해구 정책기획위원장이 “소득주도 성장을 내세운 문 정부에서 소득 격차가 줄어들지 않은” 문제를 짚었지만,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성장론도 분배론도 아닌 얼치기 전략으로 한국경제는 앞으로 나아가긴커녕 오히려 후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올 들어 친기업 행보를 하다, 규제 강화 엄포를 놓고, 또 다시 규제 안 한다는 식으로 냉·온탕을 오가는 건 이 정권 정책 참모들의 경제철학 빈곤을 드러낸다. ‘김현철 사태’를 경제 현실을 직시하고 정책을 대전환하는 계기로 삼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