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갑자기 대규모 건설 붐이 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신년 회견에서 “광역 단체별로 공공 인프라 사업을 1건 선정, 예비 타당성(예타) 조사를 면제하겠다”고 했고, 24일 대전에선 구체적인 사업도 제시했다. 지난해 11월엔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예타 면제 사업 신청을 받았으며, 다음 주엔 공식 발표도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말이 예타 면제이지, 중앙정부가 대규모 건설사업을 벌이겠다는 공약과 다름없다. 사회간접자본(SOC) 구축 사업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엄청난 국가 재정이 투입되고, 한 번 시작하면 되돌리기도 힘든 만큼 철저한 국가 투자 우선순위와 경제성을 따져 신중히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규모 국책사업일수록 반드시 예타가 필요하다. 대통령이 선물 주듯 지자체별로 1건씩, 무더기로 면제하는 방식은 결코 안 된다. 예타 제도는 김대중 정부 때 도입된 이후 정착됐다. 총 사업비 500억 원 이상이면서 국가 재정 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사업에 대해 6개월간 예타를 진행해 국가 재정 낭비를 최대한 줄이는 제도다. 지금까지 대형 사업 구상의 36%에 대해 부적합 판정을 내려 141조 원의 낭비를 막았다는 통계도 있다. 더욱이 예타 면제는 2009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이후엔 10년 가까이 없었다. 그런데 SOC에 부정적인 입장, 특히 4대강 사업을 비난해온 문 정부가 균형발전 등의 예외 조항까지 동원해 한꺼번에 허용하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하더라도 1건씩 국가 투자 우선순위와 경제성을 면밀히 따지고, 국민 여론도 수렴해 추진해야 정상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내년 4월에 실시될 국회의원 총선을 1년 남짓 앞둔 시점에 추진된다는 사실이다. 국민 여론의 전파가 잘 이뤄질 설 연휴를 앞두고 발표되는 것도 정치적 의도를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여야를 떠나 해당 지자체는 환영할 것이고, 야당도 해당 지역 득표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반대하기 어렵다. 현 정권은 생색만 내고 본격적인 재정은 다음 정권부터 투입된다. 포퓰리즘 정책의 극치를 넘어 매표(買票)를 위한 ‘신의 한 수’로도 불릴 만하다. 오죽하면 친정부 성향의 시민단체들도 적극 반대하고 나섰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