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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겸 동국대 교수·헌법학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이라 불리는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사건이, 24일 새벽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으로 점차 정점에 다가가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전직 대법원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영장실질심사까지 받았다. 물론 실정법을 위반하면 사회적 신분에 상관없이 형사처벌을 받아야 하는 건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이번 사건은 그 별칭에서 보듯이,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형사사건이다. 먼저,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자체가 외부에서 판단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동일 또는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수가 없었다. 이번 사건도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대법원장을 비롯해 다수의 대법관이 교체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즉, 과거와 달리 사법부 내부에서 사법행정권 오·남용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헌법은 제101조 제1항에서 사법권은 법관(法官)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함으로써 법관이 사법권의 주체가 됨을 밝히고 있다. 사법작용은 법관에 의한 재판을 말하는 것이지만, 국가권력의 한 축으로서의 사법권도 재판 이외의 행정업무가 있다. 사법부의 행정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사법부의 최고 기관인 대법원에는 ‘법원행정처’가 설치돼 있다. 법원조직법 제7편에는 대법원의 기관으로 법원행정처에 관한 명문 규정이 담겨 있다. 이 법 제67조 제2항을 보면, 법원행정처장은 대법원장의 지휘를 받아 법원행정처의 사무를 관장하고 법원의 사법행정사무 등을 감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과 법원조직법에 따라 사법행정권의 최고 책임자는 대법원장이다. 이번 사건은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는지가 쟁점이다. 사법행정권의 남용 문제가 발생했다면 당연히 책임 소재를 밝히고 형사처벌해야 한다. 여기에는 대법원장도 예외일 수 없다.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최후의 보루라는 국가권력이 사법권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사법부의 수장이었던 전 대법원장이 중심에 있기 때문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헌법은 형사피의자나 형사피고인의 권리도 보장하고 있다. 모든 형사사건은 헌법과 형사소송법 등에 따라 공정하고 합법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형사사건에 대해 누구든 집회나 시위를 통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집회와 시위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형사사건에서 절차가 시작되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는 자제돼야 한다. 개인이나 단체가 형사사건에 대해 집회나 시위를 통해 찬반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잘못하면 형사사법 절차에 개입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는 형사사건에서 공정하고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보호받아야 하는 형사 피의자(피고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형사피의자나 형사피고인이 현직에 있을 때, 그들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국민으로서는 구속해 처벌하라는 집회나 시위를 할 수 있다. 그런데 특정인을 구속 또는 형사처벌하라는 집회나 시위는 형사사법기관이나 사법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쳐서 공정성을 해칠 수 있으며, 그 결과 오히려 사법 정의가 훼손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헌법을 최고 규범으로 실정법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법치국가다. 누구든지 법 앞에서 예외일 수는 없으며,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로 특혜를 받아선 안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누구든 과거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 때문에 차별을 받아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