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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시험지 유출, 고액 코디네이터
교육 현실 반영한 드라마 흥행
財力으로 학력 사겠다는 망상

자녀 성공 기회 적다는 불안감
사교육 키우고 좌절감도 조장
비정상 바꿀 근원적 접근 필요

주말 저녁 귀가를 재촉할 만큼 드라마 ‘SKY캐슬’이 화제다. 비(非)지상파 드라마 시청률 기록을 경신하고, 대본 유출 소동을 일으킬 정도다. 지난해 11월 수능시험 한 주일 뒤에 방영을 시작한 이후, 본래 계획된 분량을 연장해 2019년 정시 발표를 앞둔 이번 주말 종영한다. 입시철이란 시기적 요인도 있지만, 이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의 관심은 뜨겁다. 사람들이 모이면 어김없이 이 드라마 이야기를 나눈다. 정치인과 교육 당국자도 ‘SKY캐슬’을 허무는 것이 교육정책 목표라고 공언하기에 이르렀다.

‘SKY캐슬’의 흥행 성공은 극적 재미와 긴장, 뛰어난 연출과 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줬던 고액 입시 코디네이터, 시험지 유출로 전교 1등 만들기, 해외 명문대 가짜 대학생 행세 등은 모두 실제로 있었던 현상이나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단편적 사건만이 아니라, 드라마의 기본 구도와 내용의 전개와 흐름도 교육 현실을 잘 반영한다. ‘SKY캐슬’에 드러난 우리의 교육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우선, 한국 부모 특히 엘리트 부모의 엄청난 교육열이 있다. 그것은 단지 자녀가 좋은 교육을 받도록 하겠다는 데 그치지 않고, 전체 1등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제로섬 성격의 경쟁적 교육열이다. 경쟁적 교육열은 상승작용으로 쉽게 과열되고 엄청난 경제·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 ‘SKY캐슬’ 어머니들은 대부분 전업주부로 자녀 교육에 전념한다. 한국의 많은 기혼 여성 경력 단절은 자녀 교육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과열 경쟁은 1등만 행복하고 나머지는 불행하게 만든다. 심지어 1등까지도 자리를 빼앗길까 불안에 떨게 한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보다 앞서려는 강한 유혹은 부모와 학생을 악의 구렁텅이로 끌고 가기도 한다.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열은 사교육에 대한 의존을 높인다. 성공한 사교육 전문가들이 나중에 반성하듯이 사교육은 교육의 본질을 벗어나 비인간적으로 되는 경우가 많다. 사교육의 득세는 공교육에도 그늘을 드리워 교권 추락을 비관한 교사들의 명예퇴직 신청이 계속 늘어난다. 또한, 사교육비 지출 증가는 가계 부담을 늘리고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사교육을 받는 학생 비율은 10년 전 77%에서 그간 10%포인트가량 줄었지만, 그 대부분이 사교육비 부담이 큰 저소득층 학생들이라 결국 사교육 불평등은 높아졌다. 본인 능력이나 노력이 아닌 부모의 재력이 자녀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라는 생각은 ‘SKY캐슬’ 부모들에게 당연하고, 우리 사회 전반에도 그 비중이 커지고 있다.

교육 불평등이 심해지면 세대 간 계층 대물림도 늘 수밖에 없다. 부모 세대에선 가능했던 흙수저 출신의 성공이 자녀 세대에선 처참하게 실패해 버리는 드라마 내용은 그래서 더 안타깝다. 우리 사회에서 계층 상승 이동 기회가 줄어든다는 우려는 계속 커져 왔다. 본인보다 자녀가 잘될 것으로 낙관하는 비율이 10년 전엔 절반에 가까웠지만, 최근에는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성공 기회가 계속 줄어든다는 불안감은 능력 있는 부모들이 더욱더 사교육에 매달리게 만드는 반면, 사교육 뒷바라지 능력이 부족한 부모나 자녀들은 좌절하게 한다. 최근 교육 기회의 공정성에 대한 믿음이 낮아지기 시작한 것은 교육 불평등과 대물림 심화 때문일 것이다.

성공 기회가 줄고 경쟁은 치열해지면서 학생들은 점점 더 좁은 문으로 몰린다. ‘SKY캐슬’이 대학병원 의사 가족을 대상으로 하지만, 부모들의 목표는 ‘SKY’도 서울대도 아닌 서울대 의대뿐이다. 이 드라마에는 대학 서열 구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들이 계속 등장한다. 학생들의 관심이나 적성은 무시되고 순위만이 중요해졌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엘리트가 돼 이끌어갈 미래는 그래서 우울하다. 직업윤리를 저버린 채 자신의 딸이 죽도록 방치하고는 뒤늦게 통탄하며 울부짖는 엘리트 의사의 모습은 안타까운 동시에 섬뜩하다.

‘SKY캐슬’이 보여주는 비정상적인 교육 현실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문제는, 정부 정책으로 이러한 비정상이 쉽사리 바뀔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자사고 존폐 또는 입시제도 개편에만 관심이 집중되면 해결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부모·교사·학생의 마음을 헤아리고 설득해서 신뢰와 협력을 얻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