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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열 경제산업부 부장

정부의 과학기술 혁신성장 정책인 데이터·인공지능(AI) 경제 활성화 계획이 나왔다. 5년 안에 국내 데이터 시장을 30조 원으로 키우고, AI 유니콘도 10개 탄생시킨다는 다짐이다. 늦은 감이 있다. 미국을 100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데이터 기술력은 79, 특히 AI 기술력은 78로 한참 처졌다. AI 윤리 가이드라인도 그렇다. 일본은 2년 전 학계에서 AI 윤리지침을 확립한 후, 두 달 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인간 중심 AI 사회 7대 원칙도 발표했다. 내년 오사카(大阪) G20 정상회의에서 국제표준까지 노리고 있다. 우린 내년 하반기 첫 제정이라니, 한국형 AI에 속도를 더 내야 한다. 일반인이 AI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다.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알파고 쇼크’다. 고(Go·碁)는 바둑의 일본식 발음이다. 컴퓨터가 퀴즈대회나 체스에서 인간 챔피언을 이긴 적은 있었다. 하지만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 수보다 더 많은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 바둑은 안될 것이라고들 여겼다. 계산(수읽기)도 중요하지만 인간 고유의 직관도 크게 작용한다고 믿었다가 4 대 1로 패했다. 이후 다시는 인간이 바둑에서 기계를 이기지 못하고 있다. 프로기사들은 요즘 AI 프로그램 하나쯤은 다 갖고 있다고 한다. AI를 상대로 끊임없이 연습대국을 하며 기력(棋力)을 연마하는 게 바둑계 풍토가 됐다.

그런데 얼마 전 과학자들이 충격을 받았다. ‘알파폴드 쇼크’다.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규명하는 학술대회에서 AI가 인간 팀을 압도했다. 폴드(Fold)는 단백질 접힘이란 뜻이다. 단백질은 20종류 아미노산의 4단계 결합체다. 1단계, 아미노산을 줄지어 사슬 형태로 묶는다. 2단계, 줄을 배배 꼬거나 색종이처럼 접는다. 3단계, 꼬이거나 접힌 사슬은 실타래처럼 엉키면서 입체적 벽돌 모양이 된다. 마지막으로 벽돌을 2∼4개 쌓아 단백질을 만든다. 예컨대, 혈액 속 산소를 나르는 헤모글로빈 단백질은 4개의 벽돌을 쌓은 구조다. 문제는 사슬이 어디서 어떻게 접히는지 모른다는 것. 왜 이걸 알고 싶어 할까. 생명과 질병의 비밀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단백질은 세포 기능을 조절하는 신호등 역할을 한다. 단백질 신호가 고장 나 멋대로 켜졌다 꺼졌다 하면 병이 난다. 당뇨, 파킨슨병은 잘못된 단백질 접힘에서 생긴다. 접힌 모양과 각도 등 3차원 구조를 파악하면 치료는 쉽다. 하지만 단백질 접힘, 즉 아미노산이 휘고 얽히는 경우의 수는 무한대에 가깝다. 여기에 알파고를 만든 회사, 딥마인드가 도전했다. 그리고 미지의 단백질 구조 예측대회에서 과학자팀을 25 대 3으로 이겼다. 바둑처럼 다시는 인간이 이 종목에서 기계를 이기지 못하리라. AI가 기초과학 연구에 투입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으로 과학자도 프로기사처럼 AI를 옆에 끼고 연구하는 풍경이 일반화될 것이다.

가장 놀라운 건 속도다. 알파고 2년 만에 알파폴드가 탄생했다. ‘알파○○’ 시리즈의 전개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있다. 딥마인드의 작명도 의미심장하다. ‘알파’는 그리스 알파벳 첫 글자다. AI 1세대다. 2세대 ‘베타’, 3세대 ‘감마’쯤 가면 이들을 이길 만한 종목이 인간에게 남아 있을까. 한국인의 빨리빨리 정신이 필요하다.

nos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