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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택시와 카카오는 지금 한국사회 최대의 앙숙이다. 카카오가 카풀 시범서비스에 나서자 택시업계는 실력행사로 저지에 나섰다. 카카오가 계속 강행하면서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급기야 택시기사 2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카카오는 서비스 잠정 중단을 결정했다. 불화(不和)는 여전한데 그 이면에선 전혀 뜻밖의 기류가 흐른다.

택시 호출 서비스 ‘카카오T 택시’가 지난달 월간 기준으로 사상 처음 실사용자 1000만 명을 넘었다. 택시업계의 대대적인 불매 운동에도 카카오를 통한 택시 운행은 외려 더 늘어난 것이다. 택시 기사로선 승객들이 주로 찾는 카카오T 호출을 외면하기 어렵다. 전국 택시 기사의 85%인 23만 명이 카카오T에 가입해 있다. 최근엔 서울 택시업체 50개가 ‘타고솔루션즈’라는 회사를 만들어 승차거부 없는 택시 등 고급서비스를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호출 서비스 파트너로 카카오를 택했다. 사업을 위해 시장지배자인 적(敵)과 손잡은 것이다.

8∼11일 열린 미 라스베이거스 ‘소비자가전쇼(CES) 2019’에서도 통념을 뛰어넘는 합종연횡이 내내 화제였고, 삼성전자와 애플의 협업 발표가 그 정점이었다. 양사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패권을 다투면서 7년간 특허소송까지 벌인 라이벌이다. 1년여 전 삼성전자의 제안을 애플이 받아들이면서 삼성 스마트TV에 ‘아이튠즈’와 ‘에어플레이2’ 탑재가 성사됐다. 삼성은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하고, 애플은 넷플릭스 등의 위협에 대응할 방어진을 구축했다. 특히 고립주의 플랫폼 전략을 고수해온 애플의 변신이 놀랍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아우디와 디즈니, BMW와 워너브러더스, SK텔레콤과 하만, 네이버와 퀄컴 등 예상을 뛰어넘는 이종(異種)교배도 줄줄이 나왔다.

모든 부문이 강한 회사는 없다. 특히 업종 간 경계가 무너지는 4차 산업혁명기에는 적절한 파트너를 찾아내는 것도 혁신이다. 부족한 기술·경험 보완은 물론, 상대방 고객까지 단숨에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고수는 ‘적의 칼’로 싸운다고 했다. 타인의 전략과 상품, 서비스와 마냥 맞서기보다 역이용하는 게 상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대기업 총수들과 만났다. 적폐세력으로 적대시하던 것에서 진일보한 의미가 있다. ‘적과의 동행’은 상호이익이 전제다. 이날 행사로 기업인들이 무얼 얻었는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