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核) 위협이 고착화해 가는 상황인데도 문재인 정부는 ‘안보 무장해제’에 더 급급해하고 있다. 국방부는 15일 펴낸 ‘2018 국방백서’에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이 우리의 적(敵)’이라는 기존 규정마저 삭제한 채 ‘우리 군은 대한민국의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적으로 간주한다’고 얼버무렸다. 북한이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온 용어로,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도입한 ‘킬체인(Kill Chain)’ ‘대량응징보복(KMPR)’ 등도 폐기했다. ‘2018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최초의 미·북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새로운 안보 환경 조성’을 이유로 들었으나, 북한 정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굴종적 자세가 확연하다.

그렇잖다면 핵과 미사일, 생화학무기 등으로 대한민국을 직접 위협하는 정권으로는 유일한 북한을 명시하지 않았을 리 없다. 분명하게 엄존하는 적조차 모호하게 흐려서는 국방의 목표부터 흔들리게 마련이다. 1988년부터 ‘북한=적’을 명시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현존하는 위협’ ‘직접적 군사위협’ 등으로 바뀌면서 국민적 비판과 우려를 자초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2010년 원래 표현으로 되살린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문 정부가 완전히 삭제해 ‘적’ 개념을 김대중·노무현 정부보다 더 형해화한 것은 군의 대북 대응력 자체를 무력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욱이 대한민국 안보에 절체절명의 과제인 북핵 폐기는 더 요원해지고 있다. 심지어 주일(駐日) 미군사령부는 웹사이트를 통해 북한을 중국, 러시아와 함께 동아시아의 3개 ‘핵보유 선언국’으로 공표하며, 북한이 15개 이상의 핵무기를 가진 것으로도 적시했다. 일각에선 사실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것으로, 최악의 경우 주한(駐韓)미군의 부재(不在) 상황까지 염두에 둔 것이라고도 분석한다. 대한민국 안보가 지극히 위험하고 엄중한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문 정부는 북한만 바라보다 동맹도 잃고, 국가 안위의 근본이 흔들리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