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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일일시호일’

살아가는 일은 지루하고도 힘겹다. 매일 특별하지 않은 일이 반복되고, 기쁨보다는 시련과 좌절의 시간이 더 많게 느껴진다. 하지만 하루하루 살아내다 보면 어느새 자신만의 색깔이 진해지고, 희미하게나마 뭔가를 깨달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지난해 9월 별세한 일본 국민배우 기키 기린(樹木希林)의 마지막 주연작인 ‘일일시호일’(감독 오모리 다쓰시·사진)에는 삶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일본 다도(茶道)를 주요 소재로 풀어낸 이 영화는 매일 같은 차를 우려 매번 같은 사람에게 대접하더라도 같은 만남이 아니기에 매 순간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라고 조언한다. 그래야 ‘매일매일 좋은 날’(日日是好日)을 맞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오는 17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스무 살이 된 주인공 노리코(구로키 하루)가 사촌 미치코(다베 미카코)와 함께 이웃에 사는 다케타 선생(기키 기린)에게 다도를 배우기 시작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노리코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혼란스럽게 지낸다. 다도도 마찬가지다. 차 수건을 접는 방법과 걸음의 수, 찻잔 위치와 그것을 잡는 손동작, 복잡한 예법 등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따라 할 뿐이다.

그 사이 미치코는 계획대로 무역회사에 들어가고 의사와 결혼해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노리코는 입사시험에 번번이 떨어져 프리랜서로 살아가며 사귀던 남자에게도 배신을 당한다. 불안감에 싸여 서른이 되고, 마흔을 맞은 노리코는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형태를 먼저 만들고 그 안에 마음을 담는 다도처럼 노리코의 삶도 다양한 일을 겪으며 뭐든 담아낼 수 있는 틀이 형성됐고, 인생의 맛과 향기를 그 안에 차곡차곡 담게 된 것이다.

자극적인 사건 없이 사계절, 24절기에 따라 잔잔하게 전개되는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오직 한 번뿐인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영화 첫 장면에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길’을 보고 오며 “무슨 내용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던 열 살의 노리코가 마흔이 넘어 마지막 장면에서 독백하는 내용이 이 영화에 담긴 메시지를 잘 설명해준다. “세상에는 금방 알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금방 알 수 있는 건 지나가도록 두면 된다. 그러나 금세 알 수 없는 것은 오랜 세월을 거쳐 조금씩 깨달아 간다. 어릴 때 이해 못 했던 영화 ‘길’에 지금의 내가 하염없이 눈물을 쏟듯”. 12세 이상 관람가.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