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 금융산업과 KB 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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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새해 벽두부터 조짐이 좋지 않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가 8일 총파업을 할 것이라 한다. 국내 은행 중 가장 큰 데다 금융산업 노사 관계에 미치는 영향력도 크다. 최근에 민주노총이 올해 사업목표로 사회 대개혁을 내걸고 정부·자본과 투쟁한다고 했기에 우려가 더 크다. 경제 여건이 최악으로 내닫고 있어 기업에는 경제위기의 경고로 들리고 경제 활성화에 매달린 정부에는 도전으로 보일 수도 있다. KB국민은행을 먹여 살리지만 금리가 올라 원리금 상환에 쩔쩔매는 고객들의 실망과 우려가 크다.

KB국민은행 노조의 파업은 명분이 약하다. 평균 연봉 9100만 원을 또박또박 받으면서 기본급의 300%를 경영성과급으로 달라 하고, 유니폼을 없앴는데 피복비를 요구하며, 시간외 수당 신청 기회를 줬지만 하지 않은 직원에 대한 보상 조로 전 직원에게 150%를 지급하라고 한다. 사용자는 경영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일부 지급할 수 있다고 물러섰지만, 노조는 무조건 지급하라고 버틴다. 더구나 우리은행이나 NH농협은행의 성과급이 200% 수준인 반면, KB국민은행은 총 영업이익 경비율이 업계에서 가장 높다.

다른 나라에서 은행 파업은 보기 힘들다. KB국민은행 ‘파업’은 우리나라 은행산업의 난맥상을 보여준다. 한국의 은행은 주인이 없는 산업이다 보니 정부가 사사건건 간섭한다. 그 대신 정부는 은행을 보호하기 위해 경쟁을 제한한다. 이런 약점은 노동조합이 경영에 깊숙이 개입할 수 있게 만들고, KB국민은행처럼 노사 갈등을 키웠다. 은행의 독점적 지대가, 급여는 올리고 고용은 줄이며 경쟁력은 떨어뜨린다. 한국의 은행산업은 급여 수준이 선진국보다 높고, 고용 비중은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 100대 은행 중에서 한국의 은행은 경제 규모에 걸맞지 않게 모두 60위 바깥에 있다.

한국 경제는 불확실성이 매우 커서 작은 충격도 큰 위험으로 이어지기 쉽다. 세계 경기가 둔해지고 무역 분쟁이 커지는 데다 한국 경제는 투자 격감 속에서 구조조정 압력이 강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KB국민은행 파업은 행여나 모를 경제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이 살얼음판에 파업은 KB국민은행 노조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게 할 것이다. KB국민은행 노조는 이름 그대로 ‘국민의 은행’답게 파업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

세계 금융산업은 대격변기에 있다. 금융 강국인 미국이나 영국은 물론 신흥 금융 강국으로 떠오르는 중국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금융산업은 우물 안 개구리 같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혁명은 전통적인 은행을 사양 산업으로 만들고 있다. 이에 맞춰 인적자본과 조직을 혁신하지 못하면 은행은 도태하고 말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KB국민은행마저 시골은행이 되기 십상이다. 금융산업의 주역인 노·사·정의 인식이 확 바뀌어야 한다.

정부는 책임이 무겁다. 규제 완화를 통해 금융산업의 노사가 이러한 변화에 눈을 뜨게 만들어야 한다. 금융 소비자 보호와 공공성 강화도 변화하는 틀 속에서 찾아야 한다. 노동계 요구대로 노동이사제 도입을 검토한다는 안이한 자세는 시시각각 바뀌는 금융산업 환경에 대응할 시간을 놓치게 하고 노사 갈등만 키운다. 노조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임금 인상 및 고용 보호와 노동조합의 경영 참여 등에 매달린 대립적 노동운동은 일자리 불안을 더 키운다. KB국민은행 노조는 파업이 아니라 혁신의 길로 가야 한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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