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 일방적 소송 진행하더라도
앞으로 女에 문자로 결과 전달

일방적으로 이혼당하고도 통보조차 받지 못했던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이 앞으로는 적어도 문자메시지를 통해 이혼 사실을 알 수 있게 됐다. 여성단체들은 세계에서 여성인권이 가장 열악한 사우디가 향후 이를 얼마나 개선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3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사우디 법무부는 이날 오는 6일부터 남편이 제기한 이혼소송에 대해 법원이 이혼 결정을 내리면 아내에게 의무적으로 문자메시지가 전달되도록 하는 새 규정을 시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왈리드 알삼마니 법무장관은 성명을 통해 “새로 실시될 규정은 경제·사회 개혁을 위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비전 2030’ 청사진과 맞물려 있다”며 개정안 통과 배경을 설명했다.

사우디는 이전까지만 해도 남성이 아내에게 알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해 진행해 결과가 나오더라도 여성은 알수 없었다. 이 때문에 자신이 이혼당한 지도 모르고 지내던 여성 중에는 때를 놓쳐 위자료를 청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잦았다. 사우디 내에서는 ‘이혼 사실을 가장 늦게 아는 건 아내’라는 씁쓸한 농담이 퍼질 정도였다.

여성인권 운동을 벌이며 개정안 통과에 앞장선 니스린 알감디 변호사는 “새 조치는 여성이 이혼할 때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도와준다”며 “결혼생활 중 남편의 일방적 요구로 만들어진 계약서가 이혼 후 효력을 발생시키지 않게 예방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빈 살만 왕세자는 2017년 왕세자 자리에 오른 뒤 경제·사회 개혁의 일환으로 여성인권 향상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해외 언론은 지난해 10월 발생한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사건의 배후로 지목당한 그가 서구 국가들의 비판여론을 의식해 여성인권을 대폭 향상시키는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사우디 여성들의 가장 큰 족쇄로 직장생활, 출입국 등 일상생활에서 부친 등 남성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후견인 제도(guardianship system)’가 꼽힌다. 일각에서는 빈 살만 왕세자가 후견인 제도를 대폭 손볼 가능성에 기대하고 있지만 보수층 반발을 넘어서야 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