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의혹을 받고 있는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퇴 등 동향’ 문건 등이 자료 차원을 넘어 실행됐을 개연성도 커지고 있다. 명단에 나오는 대상자들이 임기 만료 전에 실제로 유형·무형의 압박을 받고 사퇴했으며, 그 자리는 ‘낙하산’ 인사가 차지하고, 사퇴를 압박한 공직자는 승진하는 등의 정황이 구체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산하기관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환경부가 이 정도면 다른 부처에선 더 많을 개연성이 짙다. 청와대가 330개 공공기관의 660명 임원 리스트를 만들고, 이 중 야권 성향 인사 100명의 리스트는 따로 관리했다는 추가 폭로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문건에 등장하는 한국환경공단 전직 임원은 인터뷰에서 “올해 초 환경부 기획조정실장이 공단 이사장에게 사퇴하라는 뜻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사장은 사퇴했고, 기획조정실장은 차관으로 고속 승진했다. 버티던 다른 임원은 업무추진비 감사 착수에 마지못해 사퇴했다. 이렇게 생긴 자리들은 전문성이 없는 여당·시민단체 인사들로 채워졌다. 청와대나 해당 기관은 문건과 실행은 무관하다는 논리로 블랙리스트를 부인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일괄 사표 등이 일제히 진행된 데는 누군가의 기획과 지시가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종합적 명단이 존재한다면 당연히 심각한 문제이고, 만들지 않았거나 폐기했더라도 이런 행태 자체가 ‘무형의 블랙리스트’에 해당된다.

우여곡절 끝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비서관이 3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하게 됐다. 환경부를 넘어 정부 및 공공기관 전반에 환경부와 유사한 일이 있었는지 전모(全貌)를 밝힐 출발점이다. 시일이 촉박하고, 물증도 부족해 직권남용 등 실상을 당장 입증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감찰 라인’ 전원과 김태우 수사관을 함께 출석토록 해 위증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선서를 하게 한 뒤 청문회 식으로 진행해야 한다. 한 차례로 끝낼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