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업난에 성적 목매는 현실… ‘師弟 갈등’ 심화

학점 이의신청 기간만 되면
따지고 문자 보내고 신경전
교수들 “평가권한 침해 과도”

학생들 “취업당락 좌우하는데
무조건 수긍하라고만 고집”

“교수님, 이번 학기 열심히 수강한 과목인데 제 학점이 왜 이런지 설명해주세요.” “교수의 평가권한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 아닙니까.”

취업난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대학의 학점 이의신청 기간에 학생과 교수 사이에 양보 없는 학점 갈등이 빈번해지고 있다. 지난해 4년제 대학 취업률이 66%로, 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데서 알 수 있듯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일자리 부족 현상이 심화하면서 갈등 양상은 더 깊어지는 모습이다.

서울 A 대학의 B 교수는 최근 성적 입력 작업을 마치고 한숨을 돌리지도 못한 채 학생들의 성적 이의신청 전화, 문자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 집으로 학생이 찾아오거나 학부모가 전화를 하기도 한다. 대부분 “장학금을 신청해야 하는데 해당 과목 학점 때문에 받을 수 없을지 모르니 학점을 조금이라도 올려줄 순 없느냐”는 ‘읍소형’이 많다. 학기 중 다른 학생의 과제, 시험 점수 등을 조목조목 비교하며 “어떤 점에서 부족한지 평가 기준을 제시해달라”는 의견도 있다. “A 학점이 아니라 B, C 학점처럼 애매한 학점을 받느니 재수강할 수 있도록 D 이하 학점으로 내려달라”는 등 다양하다. B 교수는 “학기 초부터 성적 평가 방법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하는데도 이처럼 교수의 성적 평가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C 교수는 “대학 측에서 요구하는 학점별 적정 비율이 있어 학생 요구대로 맞추기 힘들지만 무작정 밤늦게 전화하거나 문자 폭탄을 보내 성적 정정을 요구하는 학생도 있어 당황스럽다”고 토로했다.

학생들은 일부 교수가 평가 기준을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학점 이의신청기간에 연락을 회피한다고 오히려 불만이 많다. 대학생 D 씨는 “평점 0.01점에도 취업 당락이 좌우되기 때문에 모든 학생이 학점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며 “일부 교수는 평가권을 ‘신성한 권리’로 여겨 무조건 수긍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학점 정정 성공기’ ‘최대한 공손하게 교수에게 정정 메일 보내는 법’ 등의 ‘비결’까지 공유되고 있는 실정이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는 “채점·성적산출 오류야 당연히 정정해야 하지만 학점이 갖는 평가의 기능을 상실할 정도로 학점에 항의하는 현상이 바람직하진 않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절대평가를 늘리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지만 ‘학점 인플레’ 현상 때문에 이마저도 대안이 될 순 없다”고 지적했다.

김기윤 기자 cesc30@munhwa.com